한미家 경영권 분쟁, 장·차남 1차전 '완승'
사업방향 재정비.. 혼란 피하기 어려울 것

임종윤·종훈 형제가 한미사이언스 제51기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임종윤·종훈 형제가 한미사이언스 제51기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주주총회 직전까지도 치열한 신경전을 보였던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이  두 아들의 승리로 1차전을 마친 모양새다. 이에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이 무산되면서 내부 정비를 놓고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28일 한미약품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제51회 정기 주주총회가 경기 화성시 라비돌호텔에서 열렸다. 의결권 위임장 집계로 장시간이 소요되면서 당초 예정돼 있던 9시를 훌쩍 넘겨 12시 30분경 시작했다.

출석 주주는 대리출석을 포함해 2160명으로 집계됐으며 이들의 소유 주식 수는 모두 5962만4506주다. 의결권 있는 주식 총 수(6776만3663주)의 88.0%를 차지하는 규모다. 임종윤·종훈 사장 형제는 주총에 참석했으며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모녀는 불참했다.

이번 주총에서는 양측이 제시한 사내외이사 선임 후보에 대한 표 대결이 핵심이었다. 9인의 이사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해야 각각 입장에서 통합 추진과 통합 저지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추천 후보는 임주현·이우현 사내이사, 최인영 기타비상무이사, 박경진·서정모·김하일 사외이사 6인이었으며 임종윤 사장 측 추천 후보는 임종윤·종훈 사내이사, 권규찬·배보경 기타비상무이사, 사봉관 사외이사 5인이었다.

이들 양측 후보자 총 11명의 선임안을 일괄 상정해 다득표 순으로 최대 6명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만 표결 절차를 앞두고 주총 의장 자격 여부와 의결권수 재집계와 관련해서 주총장 내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표 집계에 난항이 걸리면서 이날 오후 3시 이후 결과가 발표됐다. 집계 결과 송 회장 등 모녀 측이 추천한 후보 6인 모두 의결권이 있는 주식수의 과반수를 넘지 못하면서 단 한 명도 선임되지 못했다. 반면 임 형제가 추천한 후보 5인은 모두 보통 결의 요건을 충족하면서 전부 선임됐다.

앞서 주총이 열리기 전 양측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지분은 송 회장·임주현 부회장 등 모녀 측이 42.66% 임이고 형제 측이 40.57%로, 모녀 측이 다소 상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소액주주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임 형제 쪽으로 쏠리면서 이변이 일어났다. 소액주주의 지분이 17%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수가 임 형제를 지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전부터 임 형제가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나누는 포털 종목토론방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절대적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같은 주장이 실제로 현실화한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임 형제 쪽으로 기운 이유로 '합병에 다가갈수록 하락하는 주가'가 가장 큰 요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6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임 형제가 낸 한미사이언스의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자 순간 주가가 8% 이상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같은날 종가 역시 전일 종가 대비 7.29% 하락한 금액으로 마쳤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합병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또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들어본 후 임 형제 편에 선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판단도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신 회장은 "소액주주들이 장기적 차원에서 자신과 한미그룹, 한국 경제 미래에 도움이 될지 좋은 결정을 해주길 기대한다"며 "개인주주들이 외면받지 않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날 주총 결과로 임 형제 우호세력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9인 중 과반수가 넘는 5인을 차지하게 됐다. 송 회장 모녀가 전날 진행된 한미약품 주주총회에서 서진석 OCI홀딩스 및 부광약품 사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되고 장녀 임주현 부회장을 그룹경영을 총괄하는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통합 경영을 위한 초석을 닦아보았으나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남은 것은 임 형제와 송 회장 모녀 간의 향후 '진짜' 경영권 확보를 위한 분쟁이다. 현재 임 형제 측은 지난 26일 법원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결정에도 항소장을 낼 것을 예고한 상태다. 또 같은 날 한미사이언스 공익 법인인 가현문화재단, 임성기재단의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도 신청했다.

임종윤 사장은 "재단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의결권은 임성기 선대회장의 유지에 따라 공익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사돼야 하고 이에 반해 특정인의 사익 추구에 동원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송 회장 모녀 측 우호지분에 공익재단인 가현문화재단(4.90%), 임성기재단(3.00%) 등을 포함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상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규정은 일부 기업집단에서 공익법인에 회사 주식을 출연한 후 이를 공익적 목적에 이용하기 보다는 특수관계인들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 및 경영권 승계 수단 등으로 남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임 형제의 주장에 한미그룹 측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된 안건이라는 입장이나 향후 법적 공방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임 형제는 OCI그룹과의 통합 결정을 되돌리고 1조원 투자유치를 통한 바이오 의약품 수탁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등 현 경영진이 구상 중인 계획과 다른 미래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본래 한미그룹 경영진이 추진하려던 행보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하는데 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주총을 마친 후 임종윤 사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주주가 주인이라는 것"이라며 "한미사이언스 주주라는 원팀은 법원도 이기고 연금도 이기고 다 이겼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미사이언스를 이끌게 된 데 따라 그간 밝혀왔던 한미사이언스의 청사진을 구체화해 공개하고 화사의 브랜드를 재확립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간 공격을 받느라 제가 하고자 했던 말들이 실없는 것이 되었는데 절대로 실없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앞으로 정식으로 공유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저희 어머니와 여동생이 이번 일을 계기로 실망하셨겠지만 저는 같이 가기를 원한다"며 "회사가 할 일이 많은 만큼 나가신 분들이 다시 돌아오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신동국 회장 등 자신을 지지해준 주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저는 대주주와 소액주주를 구분하지 않는다. 주주가 이긴 만큼, 앞으로 주주를 위한 회사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차남 임종훈 사장 역시 "앞으로 가족들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려하겠다"며 "회사의 발전에 대해서도 더 집중하고 겸손하게 커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한편 OCI그룹 지주사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주총이 끝난 후 "주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합 절차는 중단된다"고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미약품그룹의 발전을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주총장을 찾았단 이우현 OCI그룹 회장도 주총 중간에 자리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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