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김소영, 허딩(herding) 현상 경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인공지능(AI) 활용 확대를 강조하면서 “적극적인 투자와 학습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17일 한국은행은 서울 본사에서 국제결제은행(BIS), 금융위원회(FSC)와 공동으로 ‘AI, 금융, 중앙은행 : 기회, 도전과제 및 정책적 대응’을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이창용 총재는 컨퍼런스 개회사를 통해 “한국은행이 현재 경제 분석, 번역 업무, 조기 경보 시스템 개발 등에 AI를 활용하고 있다”며 “더 나아가 AI 기반의 금융시장 리스크 탐지와 업무 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한국은행이 초기 투자 규모와 자체 시스템 개발 여부를 놓고 고민이 크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한국의 중앙은행이 AI 기술의 선도적 수용자가 될지, 따라가는 입장에 머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며 “최근에는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학습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AI가 우리 일상과 산업 전반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며 “AI가 제공하는 기회와 도전 과제 모두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AI는 보이스피싱, 딥페이크와 같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12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담화 방송이 딥페이크인 줄 알았다”며 “방송국이 해킹당한 걸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AI 생태계 전반에서 강점을 지닌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며 “생산 측면에서 AI 기술의 발전은 AI 반도체에 달려 있으며,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AI 반도체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I 기술이 모바일, PC 등 다양한 기기로 확산되면 맞춤형, 저렴한 AI 반도체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이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네이버 등) 한국 기업은 AI 기반의 대규모 언어 모델을 개발해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최근 한국 IT 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어 언어 모델을 개발하거나 일본에 맞춤형 AI 소프트웨어를 수출했다”며 “AI 의료 스타트업들이 진단 정확도를 높인 기술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한국이 상품과 원자재 중심의 수출 구조였지만, 앞으로는 IT 기반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특히 인구 고령화 시대에 AI 기술이 사고를 줄이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AI는 산업 전반의 혁신을 촉진하는 촉매제로 자리 잡았으며, 금융 산업은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AI를 도입하고 있는 분야”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 기업인 모건스탠리, JP모건 등은 AI를 활용해 고객 관리와 자산 운용을 개선하고 있으며, 주요 국내외 금융 기관들도 다양한 AI 기반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BIS와 유럽중앙은행(ECB), 스페인 중앙은행 등은 AI 기술을 통해 기후 관련 금융 리스크를 평가하고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며, “AI가 금융 리스크 관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부위원장은 AI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금융 불안정성이 커질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위원장은 “유사한 AI 모델이 동일한 결정을 내리면서 시장 변동성을 확대하는 허딩(herding)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금융 안정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허딩 현상이란 경제나 금융 시장에서 여러 참여자들이 개별적 판단보다는 다수의 행동을 따라 움직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가축 떼가 특정 방향으로 몰려가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에서 유래됐다.
김 부위원장은 AI를 활용한 금융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도 제시했다.
그는 “금융위원회가 국내 금융회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AI 활용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며 “8월에는 금융회사 내부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분리하도록 한 규제를 완화해 AI 활용을 더 쉽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AI 개발과 적용에 필요한 인프라 지원도 언급했다.
김 부위원장은 “금융권이 AI를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동 인프라를 구축하고, AI 개발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라며, 전문성을 갖춘 데이터 활용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금융권과 함께 AI 안전 원칙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김 부위원장은 “AI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금융사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AI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공공목적으로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국내외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있지만, 금융당국은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2016년과 같은 상황에서도 체계적 대응이 부족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보다 강화된 시장 안정화 시스템과 대응력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