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금융소비자보호 정책 간담회 열어
문재인 정부에서 제13대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윤석헌 전 원장이 “금융산업 진흥과 감독을 한 기관이 동시에 맡고 있는 현 체계는 구조적인 충돌 가능을 안고 있다”며, 금융감독과 소비자보호 기능을 분리하는 ‘소봉형 체계’ 개편을 강하게 촉구했다.
◆ “감독은 건전성, 소비자보호는 권익 중심…역할 분리가 해법”
2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이하 한국소협)는 서울 여의도에서 ‘새정부에 바라는 금융소비자보호 정책 간담회’를 열고,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과 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체계 개편 필요성을 논의했다. 간담회에는 윤석헌 전 금감원장,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수 한국소협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윤 전 원장은 “금융위원회가 금융산업 육성과 감독 기능을 모두 맡으면서,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카드사태, 저축은행 사태,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홍콩 H지수 기반 ELS 사태 등 대형 금융사고가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홍콩 ELS 사태 때는 금감원이 고위험 상품 판매를 막으려 했지만, 금융위가 은행연합회의 로비에 밀려 이를 허용했다”며 “결국 이익은 금융사가 가져가고, 위험은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굳어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라는 왜곡된 구조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기능별로 나누는 ‘소봉형 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감독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초점을 맞추고, 소비자보호는 권익 보장이 핵심이므로 각기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두 기능은 분리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봉형 체계'는 기존 금감원의 소비자보호 경험을 기반으로 하되, 별도 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원에 독립성과 권한을 부여해 실질적인 보호기구로 자리잡게 한다는 구상이다.
금융위 금융정책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옮기고 금융감독정책과 금융소비자보호를 담당하는 별도 부처를 두는 이른바 '쌍봉형 체계'와 구별된다.
윤 전 원장은 “두 기관에 최고 의사결정기구를 두고, 일부 정무직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행정권한에 대한 우려도 해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단일조직(단봉형)은 효율성은 있으나 산업 중심으로 흐를 우려가 있고, 쌍봉형은 조정비용이 크다”며, “소봉형이 현실적인 절충안이자 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어 “지금이야말로 금융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바로세우고 소비자 권익을 중심에 두는 체계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 “금융감독, 산업 중심 체계 벗어나 소비자 주권으로 전환해야”
고동원 교수 역시 현행 감독체계의 비효율성과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금융감독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정부 외부의 공적 민간기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수직 이원화된 지금의 구조는 협업이 어렵고, 자율성과 전문성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며, “2011년 저축은행 파산, 2013년 동양 사태, 2020년 사모펀드 환매중단 등 반복된 금융사고가 그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산업 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금융감독 정책은 공적 민간기구가 맡도록 해야 한다”며 “감독 기능은 건전성 감독과 영업행위 감독으로 나눠야 하며, 대통령 직속의 ‘금융감독평가위원회’도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해서는 금감원 산하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독립시켜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전환하고, 그 산하에 ‘금융분쟁조정중재원’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 교수는 “전문성 강화를 위해 순환보직을 금지하고, 전문가를 수시채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수법인 형태의 민간 금융감독기구도 행정청으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며 “행정기본법상 행정청의 정의에 따라 입법만 되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고동원 교수는 소봉형 체계 도입을 가정한 조직 구성도 제시했다. 금감원과 소비자보호원 각각에 합의제 기구를 설치하고, 민원·분쟁·감독 등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는 한편, 소비자보호원에도 검사권 또는 공동검사·요구권을 부여해 실질적 권한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고 교수는 “감독기관 간 사각지대와 중복을 막기 위해 양 기관 간 MOU 체결 등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영국·호주 등도 이런 방식의 이원화 체계를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문미란 한국소협 회장은 “정부가 금융소비자보호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만큼, 이번 개편이 소비자 권익 증진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과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 확보가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양세정 미래소비자행동 이사장은 “소비자 신뢰를 받는 금융시장 환경을 조성하고, 금융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 당국과 업계 모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며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함께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