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사고 조사, '조종사 오류'보다 시스템적 접근 필요

지난해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제주항공 여객기와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제주항공 여객기와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무안공항 제주항공기 참사를 두고 사망한 조종사 과실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족들과 조종사노조가 사고 조사 발표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자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예정했던 언론 브리핑을 전격 취소하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조종사 오류’로 사고 책임을 단순화해온 오랜 조사 관행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사조위가 최근 무안공항 사고와 관련해 “조종사가 정상 작동 중이던 좌측 엔진을 정지시켰다”는 분석 내용을 유족 설명회에서 밝혔다. 유족들은 즉각 반발했다. 김윤미 12·29 제주항공 유가족협의회 이사는 “사망자는 반론할 기회조차 없는데, 사고 원인을 조종사 실수로 몰아가는 듯한 발표는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사조위는 조종사 과실을 시사하는 내용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유족과 조종사노조의 항의로 예정된 브리핑을 취소했다. 유족 측은 “모든 기술적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조류 충돌 가능성과 구조물 영향 등 복합적 요인을 고려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 조류 충돌·로컬라이저 분석…“예산 1억원도 안 돼”


유족들은 조사의 독립성과 신뢰성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김윤미 이사는 “정부는 추모 행사에는 10억원 넘는 예산을 책정하면서, 참사의 원인을 규명할 핵심 조사에는 1억원도 안 되는 돈을 배정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25년 사조위 수의계약 자료에 따르면 ‘조류활동 분석 및 출동 위험성 평가’ 사업은 8820만원, ‘로컬라이저 구조물 개선 연구’는 9800만원에 불과하다. 두 조사는 모두 국토교통부가 발주하고 국토부 시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만큼, 조사 결과의 객관성 확보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조사에서 ‘조종사 오류’가 반복적으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향은 오랜 논란거리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항공 사고의 다수가 ‘인적 요인’과 관련이 있지만 이를 곧바로 조종사 개인의 실수로 단정하는 건 복잡한 시스템의 상호작용을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안전공학 전문가 낸시 레베슨(Leveson)은 “조종사 실수는 종종 불완전한 시스템 설계를 드러내는 신호일 뿐”이라며 “인간 중심 비난보다는 시스템 전반의 취약성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사 조종사 실수라고 결과가 나오더라도 조종사 개인의 실수가 아닌 시스템에서 비롯된 사고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조위 발표와 관련해 유족 측과 조종사 노조, 전문가들은 ‘사망자는 말이 없다’는 맥락에서 조종사가 사망한 사고에서 사고 원인을 조종사 책임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스트레이트뉴스가 사조위 사이트에 등록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국내 항공 사고 보고서 분석에서 이 같은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 조종사 사망 사고(3건) 중 2건(66.7%)에서 조종사 과실을 판정했으며, 조종사가 사망하지 않은 사고(11건)에서는 6건(54.5%)에서 조종사 과실을 지목했다. 표본이 적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조종사가 사망한 사고에서 조종사 과실 판단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 “조종사 과실” 반복되는 진단, 시스템은 침묵


사조위가 “사고 조사는 비난이 아니라 재발 방지 목적”이라고 밝혔음에도 결과적으로 사망한 조종사에게 책임을 집중시키는 구조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많은 항공사고 보고서에서 조종사 과실 외에도 회사 교육 훈련 미흡, 매뉴얼의 불명확성, 조직 문화 같은 시스템적 문제를 함께 지적하며 복합적인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보고서 분석 결과는 무안공항 제주항공기 사고 조사가 단순하게 조종사 과실로 흘러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난 19일 무안국제공항 관리동 3층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엔진 정밀조사 결과 브리핑이 취소된 후 김유진 유가족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무안국제공항 관리동 3층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엔진 정밀조사 결과 브리핑이 취소된 후 김유진 유가족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항공기 사고 관련 최근 연구 논문들은 조종사 훈련 요구 사항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인과 요인은 변함없이 조종사 오류를 중심으로 한다는 결론을 내리며, 사고 조사가 시스템 전반의 위험을 일반화하는 현재의 ACS(조종사 자격증 표준)를 개선해 위험 식별과 위험 관리 기능을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형적 원인 분석 모델(HFACS, 스위스치즈 모델 등)이 조종사 과실 중심 분석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며, 사고 원인을 ‘조종사 오류’로 명시하는 관행을 제한하고 시스템 접근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자동화 장비 오작동, 절차 미흡, 조직 문화 등 시스템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실질적인 재발 방지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유족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추모가 아니라 진실”이라며 조사의 전면 재설계를 촉구하고 있다. 단순한 인재 여부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항공 시스템 전반의 구조와 문화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사조위도 무안공항 사고 원인 분석에서 시스템 문제를 알아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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