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참여자들 “한국 자본시장 수준 낮아”..비판 한 목소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12일 국민연금공단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와 함께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토론’을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날 스트레이트뉴스는 토론회 이후 이 금융감독원장의 언론 백브리핑 자리에서 “정부에서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해 노력 중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MSCI 선진국 지수란 글로벌 투자자들이 선진국 시장에 투자할 때 벤치마크를 말한다. 현재 선진국 지수에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총 23개국의 주식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 역시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기 위해 장기간 노력해왔으나, 번번히 실패해 아직 이머징 마켓(신흥국) 지수에 속해있다.
이 원장은 “특정 목표 기간을 정해둔 건 아니지만,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해 일관된 노력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법 공매도 방지 시스템을 선진화 하고, 금융투자협회에서 발표하는 연금 정보를 외국인 투자자가 적시에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시장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측면이 있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 주가순자산비율(PBR) 정보 등을 적시에 공시하고 다양한 투자 의사결정을 수용하는 방향을 추진 중”이라며 “이와 동시에 스튜어십코드 이행, 이사회의 주주 관련 의무 등을 보장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외국인 투자자 자본의 국내시장 유입을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일각에선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의 목표를 MSCI 선진국 편입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은 MSCI가 6월 발표한 ‘2024년 연례 시장 분류’에서 현행대로 신흥국(EM) 지위에 머물렀다.
MSCI는 “한국 시장이 공매도 금지 조치로 인해 시장 접근성이 제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며 “지난해 11월 시행한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는 일시적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장 규칙의 갑작스러운 변경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짚었다.
금융감독원은 불법 공매도 방지 시스템 등을 정비 후 내년 1분기 공매도를 재개할 것이란 입장이다.
한편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도 “한국 자본시장의 수준이 낮다”며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전무는 “올해 MSCI 신흥국 지수 전체 규모에서 한국이 차지한 비중은 13%에 불과하다”며 “20년 전인 2004년보다 오히려 4%포인트가 깎였다”고 지적했다. 박 전무는 "그동안 대만과 인도가 치고 올라와 각각 19%를 차지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GDP는 지난 30년간 7배 성장했으나, 코스피는 3배 성장에 그쳤다는 것이다. 박 전무는 “한국 자본시장 특유의 지배구조 문제와 주주 보호 이슈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한 내용의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 권리를 보호하고,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준혁 서울대 법대 교수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상장사들이 소유 지분 구조 때문에 배당 유인이 적어, 주주 가치 제고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한국의 자본시장은 사전 규제는 잘 되어 있지만, 사후 구제는 매우 부족하다”며 “특히 주주대표 소송 등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주의 펀드의 역할 강화와 증거 확보 지원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박철호 신한금융지주 IR 파트장은 한국 자본시장의 장기 투자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박 파트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주가 상승률이 미국에 비해 크게 뒤처졌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 상승이 심각하다”며 “국내 자본시장에 장기적인 투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퇴직연금 자금의 주식시장 유입 촉진과 세제 혜택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액주주 플랫폼 컨두잇을 이끌고 있는 이성목 대표는 “경영권이라는 개념을 없애고, 주주권이 강화되어야 한다”며 “또한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제한, 주주 명부 제공 미비, 표결 조작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대표는 “주주들이 겪는 고통과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와 주주 제안이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며 “주총 소집과 관련된 절차의 개선과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석호 대한상공회의소 본부장은 기업 지배구조 관련 규제 강화가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자본시장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본부장은 “특히 소수 주주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화될 경우,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며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 규제가 아닌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며, 주주 환원 확대를 위한 배당 정책 개선과 세제 인센티브 도입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연기금 수익률 제고와 관련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책임실장은 “국민연금이 기업 가치 제고를 목표로 의결권 행사와 기업과의 포용을 진행하고 있다”며 “비공개로 이루어지는 대화와 의결권 행사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나, 기업들이 충분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임실장은 “정기 주주총회 일정이 과도하게 몰려 의결권 분석 시간이 부족해 형식적인 의결권 행사가 발생한다”며 “특히 임원 보상 문제와 관련해 투명한 정보 공개와 보상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기업가치 개선 계획이 임원 보상과 연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복현 원장은 “소액주주에 대한 종합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며 “시장 참여자 사이에서 소통 횟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 원장은 “반도체 등 주력 사업을 이끌어 온 국내 기업가의 주인의식과 자본시장 이해관계자 간의 입장 차이를 조화롭게 볼 필요가 있다”며 “상법, 자본시장법 개정 등으로 의무규정을 둔다고 하더라도 실제 시장 참여자가 핵심적인 법 개정 취지를 공감하지 않는다면, 추진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