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및 명목실효환율, 10월 이후 역전
우려 크지만 IMF·글로벌 금융위기 수준 아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며 일각에선 제2의 외환위기(IMF)설이 제기된다. 최근 원/달러 환율과 명목실효환율이 역전된 흐름을 나타내고 있으나, 과거와 비교해 우려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24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 전날 대비 0.5원 내린 1451.5원에 출발했다.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3거래일째 1450원을 웃도는 상황이다. 시가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 1450원대가 유지되는 건 글로벌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16일(1488.0원) 이후 처음이다.
한국거래소의 투자자별 거래실적을 보면, 올해 1월 2일부터 12월 23일까지 외국인은 코스피를 2조6000억원 가량 순매수했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외국인은 1월 2일부터 7월 31일까지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24조8680억원을 순매수했다. 그러나 시가총액 1등 종목 삼성전자에 대한 성장동력 부재 우려가 투자자 사이에서 확산되면서 8월 1일부터 12월 23일까지 22조원 이상을 팔아치웠다.
11월 초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면서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 현상은 굳어졌다. 여기에 3일 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사태를 선포하면서 4일 새벽 원·달러 환율은 1446.50원까지 올랐다. 이는 시장이 예상할 수 없었던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후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안이 가결되면서 당시 환율 급등 현상은 일부 해소됐다.
그러나 불확실한 탄핵정국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지난주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내년 금리 인하 횟수를 종전 4회에서 2회로 줄일 것으로 시사하면서 달러 강세 현상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으면 한국 투자자 입장에선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원화를 달러로 바꿔 국내시장을 떠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율 흐름이 지속된다면, 정부의 밸류업 추진에도 불구하고 2024년 코스피 전체 실적에서 외국인이 순매도를 기록할 공산이 크다. 이러한 탓에 제2의 IMF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율 흐름만 놓고 봤을 때 한국은행은 당장 고환율 현상이 굳어질 것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서울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환율 현상 고착화를 단언하기는 아직 어렵다”며 “대외지급 능력, 대외순금융자산 등을 따졌을 때 금융기관 건전성은 아직까지 괜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행이 스냅샷에 공시한 원·달러 환율 및 명목실효환율 지수 데이터를 보면 두 지수가 역전된 건 사실이지만, 그 폭은 과거 대형 악재 사건 시기와 비교해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명목실효환율 지수는 교역국들과의 환율 변화를 각국의 교역 비중(가중치)에 따라 평균낸 값이다.
국내 통화가 여러 무역 상대국의 통화 대비 평균적으로 얼마나 강세 또는 약세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는 단순한 환율 변동이 아닌, 무역 가중치를 반영하여 계산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외 거래의 환율 영향을 평가할 수 있다.
만약 명목실효환율 지수가 100 이하로 떨어지면 자국 통화의 명목 가치가 기준 연도와 비교해 약해졌고, 교역 상대국 통화에 비해 약세를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화 약세는 자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인다. 해외 구매자 입장에서 한국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져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수입품의 가격이 상승해 국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을 유발할 수 있다. 원유나 원자재처럼 필수 수입품의 가격이 오르면 생산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스냅샷 공시를 보면 (관련 지수를 집계한) 1991년부터 현재까지 원/달러 환율은 상단에, 원화 명목실효환율 지수는 하단에 위치했다.
2개 지수가 크게 역전된 사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IMF 사태가 있었던 1998년 1월 9일 원/달러 환율은 1810원을 기록했고 명목실효환율은 66.45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당시에도 원·달러 환율과 명목실효환율 지수가 역전된 바 있다.
최근 데이터 역시 경고등이 켜졌다. 원·달러와 명목실효환율은 10월 17일부터 역전됐다. 이달 3일 저녁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사태로 두 지수 간 역전된 격차는 더욱 벌어졌는데 특히 12월 17일 원·달러 환율은 1438.9원을 기록한 반면 명목실효환율은 91.06을 기록했다.
다만 IMF 당시와 비교해 아직 두 지수간 간극은 적은 수준이다. 1998년 1월 9일 두 지수 간 격차가 1743.55 수준이라면, 이번달 17일은 1347.84로 간극 폭이 훨씬 좁다.
물론 저출산 고령화 여파로 중장기적인 원화 약세 흐름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 한국은행은 2026년까지의 잠재성장률을 약 2%로 추정했다. 2040년대 후반에는 0.6%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19.2%를 차지하며, 2025년에는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창용 총재는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자리에서 “(내수부진 해결을 위해) 통화정책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라며 “여러 구조적인 요인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