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시행 1년 넘었지만 코스피 PBR 1배 미만
정부 주도로 추진은 하지만 정체성 ‘모호’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정부의 밸류업 구호 아래, 시장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으로 술렁였다. 하지만 정작 주가는 움직이지 않았고,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기업가치 상승’은 실종됐다. 실적 개선 없는 배당 확대는 오너 일가나 외국인 투자자에게만 유리한 ‘단기 이벤트’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밸류업은 그 본질보다 껍데기만 남은 상태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속 빈 밸류업 시리즈」를 통해 국내 자본시장의 현주소를 짚고자 한다. <편집자 주>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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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해 초 야심 차게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1년이 지난 지금, 시장에서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시장가치를 끌어올려 저평가 해소를 목표로 했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오히려 더 견고해지는 모습이다. 최근 글로벌 증시에 충격을 준 외부 악재 속에서도 한국 증시는 가장 취약한 반응을 보였다.


◆ ​​​​​​‘말뿐인 밸류업’…시장 기대감 실종


9일 오전 9시 42분 현재 한국거래소에서 코스피지수는 전날 종가 대비 1.03%(24.09포인트) 하락한 2310.14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정부의 관세 정책 이슈로 코스피는 월요일 5.57% 급락했다. 화요일에는 0.26% 반등했지만, 다시 하루 만에 1% 넘게 하락하며 회복세가 꺾였다.

코스피의 낮은 회복력은 결국 ‘기초 체력’, 즉 펀더멘털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2월 일본의 ‘도쿄증권거래소 개혁’을 벤치마킹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저평가된 기업에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지배구조 개선 등을 유도해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였다. 이 발표 이후 초반에는 시장에 기대감이 형성됐다. 같은해 3월 말 기준 코스피 상장 주식의 외국인 지분율은 34.42%를 기록했다.

그러나 정책 발표 이후 1년 가까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제도 설계나 인센티브 방안이 뚜렷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시장의 기대는 빠르게 식었다. 

2024년 5월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에도 밸류에이션은 달라지지 않았다. 2025년 4월인 현재도 코스피 PBR은 1배를 밑돌고 있고, 글로벌 시장과의 격차는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PBR 1배 미만 기업 비중은 확대됐다. 2024년 3월 기준 코스피 상장사의 69%가 PBR 1배 미만이었으나, 2025년 3월에는 73%로 증가했다. 코스닥 역시 같은 기간 40%에서 53%로 높아졌다. 한국 시장에 ‘코리아 프리미엄’은 아직 없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여전히 뚜렷한 이유다. 

메리츠증권 제공.
메리츠증권 제공.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평균 PBR은 0.8배로 1배를 밑돌았다. 같은 시기 일본(1.4배), 미국(4배대)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특히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홀딩스 등 시가총액 상위 기업 다수가 여전히 1배 미만의 PBR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정책 효과가 핵심 기업까지 확산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반면 일본은 2021년 도쿄거래소가 직접 ‘PBR 1배 미만 기업의 개선 방안 제출’을 요구하는 등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후 자사주 소각·배당 확대 등 실질적인 변화가 뒤따랐다. 


◆ 한국의 밸류업 실패, 예정된 수순?


증권업계에선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는 “한국 자본시장은 여전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틀에 갇혀 있다”며 “구조적 저평가의 핵심에는 낮은 PBR, 불투명한 지배구조, 단발성 주주환원 정책이 자리 잡고 있어 단기 이벤트만으로는 근본을 바꾸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밸류업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제도 시행 초기부터 존재했다. 지난해 3월 최진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업 밸류업’은 다소 불명확한 반면, 일본의 ‘기업가치’는 ‘수익 창출 능력’으로 명확히 정의된다”며 “주가는 기업의 본질가치에 더해 다양한 요인이 반영되므로, 단순 주가 부양과 중장기적 수익성 제고는 서로 다른 접근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밸류업 참여에 강제성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기업이 공개하는 공시의 질까지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메리츠증권은 “밸류업은 단순히 공시 숫자를 채운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며 “중요한 것은 공시의 질이며, 더 중요한 것은 실행을 담보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지배구조 개혁 없는 단기 정책만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24년 밸류업 본공시 기업 중 89.4%가 주주환원 관련 재무지표를 핵심목표로 설정했다. 반면 ▲자본효율성(73.4%) ▲성장성(48.9%) ▲시장평가(30.9%) 관련 지표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반영한 장기 전략보다는 단기적 주주환원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기업밸류업 지원방안세미나에 앞서 인사말 중인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한국거래소 제공.
기업밸류업 지원방안세미나에 앞서 인사말 중인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한국거래소 제공.

증권업계 전문가 A씨는 “밸류업은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니라 시장에 대한 신뢰 회복 장치”라며 “명확한 실행 없이 시간을 끌다 보면 외풍 한 번에 무너지는 구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속 빈 정책이 아닌 실질적 변화가 담보된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늪은 더 깊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연구계에서는 밸류업 정책에 대해 단기적 성과보다는 중장기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국내 상장기업 저평가에 관한 고찰’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한국 주식시장의 만성적인 저 PBR 현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이는 낮은 본질가치가 반영된 결과일 뿐, 해외 주요국 대비 체계적인 저평가로 볼 근거는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순자산, 수익성, 주주환원 요소를 결합한 본질가치와 비교해 보면, 한국 상장 비금융기업은 해외 주요국 비금융기업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시장가치를 형성하고 있다”며 “이는 국내 증시의 디스카운트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PBR 하나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보유 자산의 공정가치, 미래 현금흐름 창출 능력, 주주환원 정책의 적정성이라는 세 축에서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현재와 같은 낮은 수익성이 유의미하게 개선되지 않는 한, 단기간에 주가가 끌어올려지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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