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제도개혁 없인 투자자 외면 계속될 것”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정부의 밸류업 구호 아래, 시장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으로 술렁였다. 하지만 정작 주가는 움직이지 않았고,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기업가치 상승’은 실종됐다. 실적 개선 없는 배당 확대는 오너 일가나 외국인 투자자에게만 유리한 ‘단기 이벤트’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밸류업은 그 본질보다 껍데기만 남은 상태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속 빈 밸류업 시리즈」를 통해 국내 자본시장의 현주소를 짚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이재명 제21대 대선 경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었다.
이재명 제21대 대선 경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었다.

해외 자본과 유망 기업들이 미국 증시로 몰리는 사이, 한국 자본시장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밸류업만으론 부족하다”며, 제도 개선과 신뢰 회복 없이는 체질 개선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 IPO는 미국으로, 외면받는 한국시장


21일 이재명 제21대 대선 경선 후보는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한민국 경제가 너무 어렵고 자본시장이 정상화돼야 국민의 삶도 나아질 수 있다”며 “주식시장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재명 경선 후보 발언이 더욱 눈길을 끈 이유는 한국 자본시장의 빈약한 경쟁력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16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IPO는 총 1378건, 1310억 달러(약 178조원)의 자금조달에 성공했다. 특히 상위 10대 IPO 가운데 3건이 미국에서 진행돼 미국의 시장 흡인력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밖에  유럽(2건), UAE(2건), 일본(1건) 순을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 IPO 대어로 불리는 기업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에 상장한 외국기업 비중은 0.8%에 불과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미국을 글로벌 IPO의 전략적 거점으로 지목하며, “미국시장이 선진 자본시장으로서 다양한 기업공개 수단과 외국 기업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 중 25% 이상이 해외 기업으로, 일본(0.2%)이나 홍콩(6.9%) 대비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시장은 해외기업 유치에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이중상장(ADR) 중심의 제한적 접근,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 밸류에이션(0.92배),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낮은 주주환원율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4.8배), 일본(1.4배)에 비해 현격히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6월 나스닥에 상장한 네이버웹툰의 모기업 웹툰 엔터테인먼트는 상장 첫날 공모가(23달러) 대비 8.70%(2달러) 높은 25달러에 마감했다. 만약 웹툰 엔터테인먼트가 한국시장에서 상장했더라면 첫날 8% 이상의 주가 성장을 기록하지 못했을 여지가 있다. 

쿠팡의 경우, 나스닥 상장 당시 공모가 35달러에 클래스A 보통주 1억3000만주를 발행해 총 45억5000만달러(약 5조2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결국 외국자본과 기업을 끌어들이는 데 필요한 것은 시장에 대한 신뢰와 성장 가능성, 그리고 예측 가능한 제도 환경이라는 점에서 한국 자본시장 전반의 전략적 전환이 요구된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 제공.
삼정KPMG 경제연구원 제공.

◆ “한국 자본시장은 구멍 난 파이프”


시장 전문가들 역시 현재 밸류업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날 간담회 참석한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의 코스피는 파이프처럼 수압이 약해져 있다”며, “해외 투자 자금 유출과 대체 자산 확대로 자본시장의 수압이 떨어졌고, 상법 개정 지연과 지배구조 문제는 파이프에 구멍이 난 것과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밸류업은 단기 과제가 아닌 국가적 프로젝트로, 장기 전략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센터장은 “자산 증식을 통해 국민이 노후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일본의 NISA(신NISA) 제도처럼 젊은 층의 주식시장 참여를 제도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국내 상장 종목 중 실제 가치 없는 종목이 너무 많다”며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수 이하인 기업들을 정리하고, 기업 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협회장은 “미국과 달리 한국 기업은 오너 경영인이 배당을 꺼리는 구조”라며 “고율의 배당소득세가 기업의 배당 회피로 이어지고 있다. 배당세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동원 KB증권 센터장은 ‘인공지능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에는 수조 원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이를 감당하긴 어려운 만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정부가 인프라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현재 사외이사 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동일 업종 출신을 배제하는 현행 규정은 기업의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사외이사 선임 기준을 완화해야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해관계 없는 전문가를 이사로 선임하라는 취지로 만든 규정이 오히려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상식이 통하는 시장, 신뢰받는 자본시장을 만들어야 국가가 성장한다"고 덧붙였다.

간담회에서는 또한 기업들의 미래전략 공시 신뢰도, 밸류업 실현 가능성, 배당 활성화 방안 등이 집중 논의됐다. 참석자들은 “미국처럼 장기 투자 기반을 다지려면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이 전제돼야 한다”며 “공시와 예측의 신뢰성을 높이고, 그 결과에 이사회가 책임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배당소득세 인하가 실제 배당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결국은 자본시장 정상화가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국민 자산 증식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방향에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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