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이창용 “정치적 불확실성” 지적
국내 기관들도 일제히 비관적 전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 주도로 관세전쟁이 진행중인 가운데, 한국 경제는 벌써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수출 실적 왜곡, 성장률 하향 조정, 통화당국의 대응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흔들리는 한국경제'’ 시리즈를 통해 한국 경제의 내일을 심층 조망한다. <편집자 주>
2025년 한국 경제는 국내 정치 불안, 글로벌 무역 긴장, 구조적 문제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한국경제 성장률 하향 조정은 이러한 위기의 심각성을 반영하고 있다. 정치적 안정과 경제 리더십의 복원, 구조적 개혁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 국제 신용평가사들, 한국 GDP 전망치 하향 조정
7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올해 한국의 연간 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9%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지난해 성장률 2.0%에서 추가적인 둔화가능성을 반영한 것이다 . 무디스(Moody’s)는 2025년 한국의 성장률을 2.0%로 전망하며, 정치적 불확실성과 글로벌 수요 약세를 주요 하향 요인으로 지목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우,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0%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최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7%로 제시했다. 지난해 12월 1.7%로 전망한 것보다 1.0%p나 낮춘 수치다.
6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의 영향과 여러가지 지표를 볼 때, 올해 성장률을 내려야 할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건설, 투자 등 내수가 안좋은 상황에서 5월 초 연휴기간 동안 소비가 얼마나 늘었을지가 최대 관심사”라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투자도 얼마나 떨어졌는지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 경제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 인구 감소, 생산성 정체, 경직된 노동 시장 등은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저해하고 있다. 지난달 IMF는 ‘4월 세계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한국사회가 겪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명목 GDP가 2030년까지 세계 15위로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국내 정치 불안정성은 경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시도와 주요 인사의 탄핵 등 정치적 혼란이 경제 정책의 일관성을 저해하는 상황이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한 달 뒤에는 나쁜 경제 지표들이 속속 발표되고, 한은이 이를 근거로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한국은행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 역시 5월에 큰 폭의 하향 조정이 예상되는 만큼 이 시점에 기준금리도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국내 경제계 파장
이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이웃나라인 중국 경제 둔화는 한국의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는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를 감안해 한국 무역협회는 올해 한국의 수출 성장률을 1.8%로 예상했다. 이는 2024년의 6.9%에서 크게 감소한 수치다.
미국 경제는 고용 지표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우려와 고율 관세 정책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는 금리 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통제를 우선시하며 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경제 정책은 글로벌 경제에 파급 효과를 미치며, 한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4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대미 수출액은 전년 같은 달보다 6.8% 감소한 106억3000만 달러(약 15조200억원)를 기록했다. 2월 99억 달러, 3월 111억 달러로 2개월 연속 증가하다 4월 들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대미 무역 흑자는 45억 달러로 1년 전보다 9억 달러 줄었다.
박정성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자동차는 1분기 수출 규모가 전년 동월 대비 11.2% 줄었는데, 4월 들어 (월간 비교) 감소폭이 더 확대됐다”며 “관세 영향과 함께 전기차 수요 둔화가 겹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완성차 중복관세 철회를 추진하며, 국내 자동차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도 있다.
29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산 완성차에 부과한 25% 관세 외에 철강·알루미늄 등 다른 품목에 대한 관세가 중복으로 부과되지 않도록 조정할 계획이다. 또한 3일부터 외국산 자동차 부품에 예정됐던 25% 관세도 조정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의약품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도 예고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2주 안에 제약 산업에 대한 품목별 관세 부과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음주 의약품 가격과 관련해 큰 발표를 하겠다며 자국 내 생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승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궁극적으로 의약품 관세를 통해 생산기지 리쇼어링(해외 공장의 미국 복귀)을 목표로 한다”며 “국내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SK바이오팜 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 연구원은 “최근 빅파마들은 미국 내 생산시설 확대를 발표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연구원은 “특히 가격 인상이 어려운 제네릭 제약사의 어려움이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