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 관세 정책, 불확실성 야기
국내 수출 여건 어두워..성장률 추가 하향 불가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종전 수준인 2.75%로 동결한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내총생산(GDP) 역성장을 경고했다.
◆ 대내외 소비·투자 위축..불확실성 짙어
17일 이 총재는 금통위 후 기자 간담회에서 “성장률 하방 위험이 확대됐고 대내외 불확실성이 워낙 커 당장은 현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며 “1분기 성장률이 소폭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2월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값을 기존 1.9%(지난해 11월 전망)보다 0.4%포인트(p) 낮췄는데, 두 달여 만에 다시 추가 하향조정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연간 기준 역성장을 기록한 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2020년(-1.0%) 정도다. 2020년 1분기 -1.3%를 기록 후, 같은 해 2분기 -3.2%까지 성장률이 떨어졌으나 3분기 2.1%로 반등했다.
이 총재는 “글로벌 무역 갈등이 심화되면서 세계 경제의 성장 흐름에 하방 압력이 커졌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그에 따른 소비·투자 위축, 다른 국가들의 수출 둔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연합 지역은 재정 확대, 중국은 소비 및 첨단 산업 부양책으로 일부 대응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성장 둔화 흐름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상황에 대해서는 “한국의 1분기 성장률이 당초 전망치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상지역 대형 산불, 건설 공사 중단 등 이례적 요인이 내수 부진을 심화시켰고, 건설 경기가 특히 기대보다 부진했다”고 밝혔다.
국내 수출 규모는 3월에 반짝 회복세를 보였으나 4월 들어 증가세가 둔화되며 약한 모멘텀이 지속되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1분기 성장 부진을 고려할 때 연간 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인 1.5%를 하회할 것”이라며 “미국의 강화된 관세 정책도 성장률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경제상황이 물가가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성장 둔화와 높은 환율 변동성, 가계부채 확대 가능성, 통상 여건 악화 등 복합적 위험 요소를 고려해 금리를 동결한 것”이라며 “현재는 터널 안에 있는 듯한 상황으로, 속도를 조절하며 밝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에 따르면, 이날 금통위에선 금리를 0.25%p 인하하자는 소수의견이 제시됐다. 또한 이창용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모두가 향후 3개월 내 금리가 2.7%보다 낮아질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창용 총재는 “최근의 성장과 물가 흐름을 볼 때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일부 의견이 있었으나, 대내외 금융시장 안정 측면에서 금통위 다수는 신중론을 택했다”고 전했다.
그는 “5월 경제전망 발표 때 국내외 여건을 종합 점검하고, 추가 인하 여부와 그 속도·폭을 검토할 것”이라며 “금리 인하 기조는 유지하되, 당분간은 지켜보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만을 기계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며 “국내 경기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되, 환율이나 자본 유출 가능성 등도 함께 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12조원 추경, 성장률 0.1%p 반등 기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에 대해 “성장률을 약 0.1%p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다만 추경의 효과는 규모와 시기, 지출 항목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당초 15~20조원 수준의 추경이 거론됐을 때는 0.2%p의 성장률 제고 효과를 기대했지만, 이번 12조원 추경은 절반 수준”이라며 “지금 시점의 추경은 단지 경기부양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창용 총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며 소비와 내수가 크게 위축됐다”며 “헌재 결정 이후 다소 안정세를 찾고 있지만, 아직 회복세라 보기는 어렵다. 하반기에는 이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여야가 합의해 추경을 처리하면, 대외적으로 ‘한국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례적으로 중앙은행 총재가 추경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밝혔다.
환율에 대해서도 발언이 이어졌다. 이 총재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까지 급등한 뒤 1420원대로 내려오는 등 “며칠 사이에 심각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환율 변동성이 줄어들려면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며 “첫째는 미국의 관세 정책, 둘째는 이에 따른 미국의 인플레이션·성장 흐름과 연준의 정책 방향, 셋째는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라고 꼽았다. “이 세 가지가 여전히 안개 속이기 때문에, 현재 환율은 레벨보다 방향성 측면에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재정정책 불확실성이 환율과 자본 유출 기대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추경과 같은 경기 대응책이 정치 리스크를 일부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며 “5월 경제전망 발표에서 추경 효과, 환율 변수, 무역 갈등의 장기화 여부 등을 종합 반영해 보다 정밀한 성장률 전망을 내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고금리 부담과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관세충격까지 더해지면서 경제하방 압력도 높아져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경기부진, 고금리 부담 등에 취약한 가계·소상공인·기업 연체증가가 금융권의 자금공급 기능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금융사의 손실흡수능력 제고와 충분한 유동성 확보 등 건전성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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