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과 물가 반비례 '필립스 곡선 변화' 주목해야
“경기 좋아지면 가격 전가 쉬워 물가 더 민감 반응”

백채원 미국 터프츠대학교 교수(왼쪽).
백채원 미국 터프츠대학교 교수(왼쪽).

금융학계가 경기 여건에 따라 필립스 곡선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기업의 생산 여력이나 수요 상황에 따라 물가와 고용 간의 전통적인 상관관계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 터프츠대 백채원 “필립스곡선, 수요공급만으로는 설명 부족”


11일 한국금융연구원은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한미경제학회, 한미재무학회와 함께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정책 파급경로의 재조명’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백채원 미국 터프츠대학교 교수는 “기업들은 경기가 좋을수록 더 많은 물건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며 “이때 임금이 올라도, 이를 판매가격에 쉽게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물가가 함께 상승하게 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결국 같은 노동시장 상황에서도 물가가 얼마나 오르는지는 경기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경기가 좋을수록 물가가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이것이 바로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경기가 침체일 때는 기업들이 생산 확대 여력이 적고 비용을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워 물가 반응이 둔해진다는 것이다.

필립스 곡선이란 영국 경제학자 앨빈 필립스가 제시한 이론으로, 실업률이 낮을수록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이 높고 실업률이 높을수록 물가 상승률은 낮다는 게 핵심이다.

한국개발연구원 제공.
한국개발연구원 제공.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상품 수출은 전년 대비 0.8% 감소했으며, 특히 대미 수출이 8.1%, 대중 수출이 8.4% 줄었다 . 4월에도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됐다. 미국의 추가 관세 여파로 대미 수출이 6.8% 감소했고, 대중 수출도 3.9% 줄며, 무역 갈등의 영향이 점차 본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

수출 둔화와 더불어 일부 제조업체의 미국 생산기지 이전이 고용시장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해외 공장 증설이 늘면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고, 이에 따른 가계소비 감소로 내수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물가 상승압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건설경기도 침체되고 있다. 통계청 및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분기 건설기성은 전년 대비 20.7% 급감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특히 4월 착공 물량이 전년 동월 대비 42.9% 감소했고, 분양 물량도 27.7% 감소하는 등 주택 및 건설경기 전반에 걸친 침체가 뚜렷하다. 이로 인해 철강, 건자재, 인력을 비롯한 관련 산업 수요도 감소하며 지역 경제에 직격탄을 주고 있다.

수출 둔화와 내수 위축, 건설경기 부진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실물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백 교수는 “많은 기존 정책은 기대 인플레이션이나 금리 수준만을 보고 결정되지만, 실제 물가가 얼마나 움직일지를 예측하려면 경기 흐름에 따른 기업의 생산 여건, 즉 ‘경기순응적 규모수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고금리와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일수록, 단순히 물가 수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물가가 왜 움직이는지를 구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며 “중앙은행의 판단이 좀 더 정밀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필립스 곡선이 왜 어떤 시기에는 가파르게 나타나고, 또 어떤 시기에는 평평해지는지를 단순 수요공급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기업들이 경기에 따라 달라지는 생산 여건을 고려하면 이를 풀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웨이크 포레스트대 서진용 “금리 효과, 기업의 자금 조달 구조 따라 차이”


기업 여건에 따라 통화정책 효과 달라진다는 주장도 있다.

서진용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대 교수는 “금융기관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에 따라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논문에서 “도매금융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활발한 은행일수록 기준금리 인하의 경기 부양 효과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기존에는 통화정책이 은행대출을 통해 일관되게 전달된다고 봤지만, 현실에서는 은행이 어디에서 자금을 조달하느냐에 따라 대출 행태가 달라진다”며 “특히 대형은행이나 글로벌은행처럼 기업금융(Wholesale) 시장을 활용하는 곳은 기준금리 인하 시 대출을 늘리는 속도가 느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같은 특성이 반영되면, 동일한 금리정책이라도 기업들의 자금 접근성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달라진다”며 “정책당국은 은행의 조달구조까지 고려한 세분화된 통화정책 운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항용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이항용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한편 이항용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은 “코로나 이후의 거시경제 조정은 끝났고, 올해는 1% 미만의 성장이 예상된다”며 “억눌린 소비와 확장 재정으로 총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이어진 인플레이션과 긴축 통화정책은 거시경제를 조정 국면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줄고, 가계부채나 부동산 PF 문제 등 내부 구조적 제약이 여전하다”며 “대외 환경도 녹록지 않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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