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속도 못따라가는 TDF·퇴직연금 운용 규모
원금보장형 중심 탈피 시급...기금형 도입 논의단계 그쳐
한국사회가 65세 이상 인구 20.3%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퇴직연금·타깃데이트펀드(TDF) 운용 구조는 여전히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적립금은 400조원을 넘어섰지만 원리금보장 쏠림, 복잡한 수수료와 단기 성과 중심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다. 일각에선 글로벌 규제 흐름에 맞춰 디폴트옵션, 보수·성과 연동, 기금형 도입 등 구조개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나라, 퇴직연금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
17일 경제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1051만명(전체 대비 20.3%)으로 나타났다. 이 속도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 보고서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어떤 나라보다 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령화가 빠르면 퇴직연금과 같은 노후자산도 커져야 한다. 실제로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4년말 431조7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400조원을 넘겼다. 같은 기간 연간 수익률은 4.77% 수준으로, 3년 연속 연 13% 이상 증가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적립금이 늘어나는 속도만큼 구조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431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356조5000억원(82.6%)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실적배당형은 75조2000억원(17.4%) 수준이다. 실적배당형 비중은 최근 2년 새 꾸준히 늘고 있지만, 아직 대다수 가입자는 저위험 중심의 상품에 머물러 있다.
타깃데이트펀드(TDF) 시장은 7월 기준 설정액이 21조8000억원을 넘겼다. TDF는 은퇴 시점에 맞춰 자산 배분이 자동 조정되는 구조로, 최근 3개월 기준 상위 상품의 수익률이 8%에 이르는 등 성과가 비교적 좋은 사례도 있다. 다만 전체 퇴직연금 자산에서 TDF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낮다.
이처럼 국내 연금시장은 점진적으로 투자형 상품 중심으로 이동하는 추세지만, 구조적으로 원리금보장형 쏠림과 장기 수익률 개선의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 글로벌 TDF 격차와 구조적 병목, 해법은 있나
국내 TDF 시장은 디폴트옵션 도입을 계기로 급성장하고 있다. 7월 기준 설정액은 21조8000억원으로, 반년 새 4조원 가까이 늘었다. 다만 미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규모의 벽’이 뚜렷하다. 미국자산운용협회(ICI)와 관련 통계에 따르면 미국 TDF 자산은 2024년 기준 4조 달러를 웃돌고, 401(k) 확정기여형 자산의 3분의 1 안팎을 차지한다.
국내의 경우 퇴직연금 적립금 431조7000억원 가운데 TDF 설정액이 20조원대에 그쳐 비중이 5% 수준이다. 규모·비중 모두 미국과는 몇십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또한 국내 환경에선 운용사와 상품 판매사의 이해상충이 여전히 존재하고, 수수료 체계가 복잡하며, 실제 투자자의 수익률에 비해 높은 총보수가 장기적으로 수익을 깎는 구조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TDF 성과만큼 운용역 보수다 뒷받침이 되지 않고 장기상품에 맞지 않는 단기 성과평가 관행이 고착된 게 사실”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2022년 7월부터 시행된 디폴트옵션 제도는 기존처럼 원리금보장형이 바스켓에 남아 있는 한, 청년층이나 장기 가입자조차 위험자산 비중을 충분히 늘리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영국·호주·미국 등은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보장형을 제외해 투자 다변화 효과를 키우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도 여전히 논의 단계다. 지금은 가입자 개개인이 책임지고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금융·연금에 익숙하지 않은 가입자는 저수익 구조에 머무르기 쉽다. 국회에는 ‘기금형’ 전환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나, 공적기금의 시장 영향력·책임 소재·감독체계 등 복잡한 과제도 남아 있다.
해외에선 연금시장 구조 개혁과 소비자 보호 규제가 동시에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소매투자전략(RIS)으로 금융사 커미션 유인을 줄이고, 영국은 ‘컨슈머 듀티’로 상품 가치와 가격의 정당성을 점검한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와 노동부가 은퇴자문 수탁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 국내 퇴직연금과 TDF 시장이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원리금보장 쏠림’부터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바스켓에서는 위험자산(주식·대체) 비중을 생애주기별로 자동 조정하는 구조가 표준이 되어야 한다”며 “수수료와 보수는 장기성과와 연동시켜서 판매사와 운용사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