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감자 한 상자를 다 심었습니다. 종자는 마트나 백화점의 식품 코너에서 많이 팔리는 강원도 수미감자입니다. 어제부터 이랑을 만들기 시작해서 이틀 만에 300평 밭에 감자 심기를 끝냈습니다.

감자 농사는 특별한 게 없고, 그저 기본에 충실하면 됩니다. 먼저 이랑에 골을 파서 일 년 묵은 퇴비를 듬뿍 뿌리고 흙과 잘 섞어줍니다. 농약을 일절 치지 않기 때문에 거름을 충분히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감자가 자라는 동안 스스로 병충해를 이겨낼 힘이 생기거든요.

쇠스랑으로 양쪽 고랑의 흙을 긁어 올린 다음에 비닐을 씌우면 심을 준비 끝입니다. 보통 호미 한 개 길이로 띄어 심습니다만 우리는 거기에 한 뼘을 더 벌렸습니다. 이웃 농부들이 지나가다가 타박할지도 모릅니다. 땅 헤프게 쓴다고...

이유있는 너른 밭 헤픈 농사

구름 보며 '노닥 노닥' 호미질

소출 나눌 생각하니 유유자적  따로 없네

우린들 땅을 알뜰히 쓰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밭이 2,000평입니다. 오미자밭은 500평, 텃밭까지 합치면 3,000평입니다. 늙은이 둘이서 농사짓기에는 꽤 너른 밭입니다. 게다가 제가 밭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일도 쉬엄쉬엄, 땅도 널찍널찍 쓰기로 했습니다. 아예 밭 한가운데에 트랙터도 다니고 손수레도 다니는 길을 내 버렸습니다. ​​2,000평의 밭을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누었습니다. 옥수수 500평, 콩 500평, 야콘 400평, 고구마 ​300평, 감자 300평.

길과 물골에 들어가는 면적을 빼면 실제 평수는 조금씩 줄어들 겁니다. ​아무튼 오늘 처음으로 뭔가를 심었습니다.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죠. ​감자와 고구마 농사는 기계를 쓰지 않고 오로지 손으로만 ​짓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삽, 괭이, 호미, 낫 같은 도구는 사용해야겠지요. ​

쉬엄쉬엄 하는 일이라 진도가 영 더디었지만 게으르다고 탓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 것도 아니고 품팔이꾼도 아닌데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미나리꽝에서 일할 적에는 품삯 값을 하느라 엉덩이 붙일 틈이 없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주인입니다.

머리 허연 남자 둘이서 노닥노닥 구름도 보고 노을도 보면서 ​호미질을 합니다. 노동이라기보단 차라리 휴식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놀면서 300평 밭을 일구고 감자를 심었잖아요.

평당 생산량, 이런 거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잘 키워서 기분 좋게 나눠 먹으면 되죠. ​일을 마치고, 장계 읍내에 가서 목욕하고 이발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십 년은 젊어 보인다고 합니다. ​저도 거울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내가 이렇게 잘생겼었나? ​단지 머리를 깎았을 뿐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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