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마을살이 공동체학교’를 연 이유

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정 기 석

서울에 ‘마을살이 공동체학교’를 연 이유

서울 한 복판에 ‘마을학교’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마을살이 공동체학교’다. 서울이란 곳이 마을이 되기에는 부적절하거나 어색한 곳이라는 평소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게 아니다. 여전히 인간은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생업과 생활과 휴식을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서울은 마을이나 공동체는 될 수 없다, 서울에서 농촌과 지역으로 자발적으로 하방(下放)하는 게 마을로 가는 외길”이라는 흔들림 없는 마을연구자로서의 소신이다.

서울에서는 일상이 전적으로 생업에 매달리거나 묶여있어 시민들은 철저히 개별화되거나 사물화되기 십상이다. 그곳은 그런 이기적 개인들이 서로를 기계적, 반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구조악이 지배하는 비정한 난민촌에불과한 도시가 서울이라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이 학교의 문을 연 이유는 나름대로 뚜렷하고 절박하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살아 생기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

그래야 사람이 너무 없어서 생기는 농촌과 지역의 문제가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미 농촌의 문제는 농촌에서 풀 수 없고, 지역의 문제는 지역에서 풀 수 없다. 농촌과 지역은 그럴 힘도, 사람도 없다. 그 힘과 사람을 도시가 다 수탈해 독과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시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농민과 농촌지역 주민의 ‘생활’을 책임지려는 도시민들을 서울 한복판에서 발견하고 발굴하고 싶다. 그런 도시민들과 더불어, 이런저런 마을학교에서 배우는 그동안의 '마을을 만드는' 지식과 기술 보다, '마을을 살리고 마을에서 살아가는' 의미과 가치를 제대로 깨닫고 싶다. 그래서 마을연구자, 마을공동체 활동가, 마을주민, 그리고 서울시민들이 그 학교에서 함께 만나, 마을과 공동체, 그리고사회적 경제 관련 모든 책, 논문, 지식, 정보, 뉴스, 이야기, 생각 등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싶다.

 

마을은 ‘사회적 자본’을 배우는 학교에서부터 

이른바 ‘마을 만들기’ 같은 마을공동체사업은 당초의기대만큼 잘 되지 않고 있다. 일부 성공사례로 평가할수 있는 곳이 없지는 않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실수와 실패를 가리기엔 역부족, 태부족이다. 정부는 실수와 실패를 줄여보려고 법과 제도라는 미봉책을 수시로 만들어보지만 ‘한국형 마을만들기’의 고질적 난제들이 법과 제도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법 이전에, 법, 제도,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의 문제, 조직의 문제가 본질적인 병인이기 때문이다.

주요 병인은 이른바 마을만들기의 3대 주체인 ‘행정, 주민, 전문가’의 문제로 집약할 수 있다. 행정은 사업에 임하는 진정성과 지원역량이 미흡하다. 주민은 사업에 대한 이해도와 내발적 역량이 부족하다. 전문가 집단은 일단 전문성이나 진정성부터 기본적인 요구수준에 미치
지 못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충분히 증거하고 있다. 특히 농촌지역은 그 발원지이자 상흔의 표본이다. 지난날 산업화, 공업화 과정에서 농촌지역의 인적자본은 대거 도시로 이동했다. 자의 보다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타의가 결정적으로 작동했다. ‘남 보다 나는더 잘 살고 싶다’는 욕심도 한몫 했다. 농촌마을과 지역사회에 사람이 사라지면서 전통적인 사회조직, 공동체조직이 와해되고 공동체 규범은 사라졌다. 이같은 인적자본의 약화로 인해 농촌마을과 지역사회 내부에 축적되었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도 따라서 쇠락했다.

농촌과 지역사회 공동체를 지탱할 활력과 동력, 희망과가능성도 동반 상실됐음은 물론이다.
결국 이처럼 인적·물적 자본, 사회적 자본이 부족하고 결여된 오늘날의 우리 농촌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마을 만들기 사업 또는 마을공동체사업이 잘 될리 없다. 새로운 동력과 희망은 ‘사회적 자본’에서 다시찾아야 한다. 특히 3대 인적 자본 주체인 ‘행정, 주민, 전문가’ 사이의 신뢰, 협력, 네트워킹 등 사회적 자본을되찾고 새로 쌓는 일이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우리 농촌지역에는 마을공동체의 재생이나 활성화를 촉발하거나 견인할 만큼 사회적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건 사람이 많은 도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농촌이든, 도시든 기존에 겨우 남아있는 사회적 자본을 조급하게 찾아내 소진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더 멀리 보고 실제로 유용한 사회적 자본을 새로, 충분히 발굴·개발·육성·축적하는데 남은 돈과 열정과 시간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자본을 발굴하고 개발하기 위한 결정적 열쇠와 도구는 결국 ‘사람(인적 사회적 자본)’일 것이다. 우선 ‘사람을 키우는 교육’에서 출발하는 게 정석이자 정공법이다. 이때 특정 마을이나 지역사회 내부만의 폐쇄적, 배타적, 고립적 ‘결합(Bonding) 사회적 자본’에 의존하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외부의 사람, 에너지 등과 열린 생태계에서 서로 만나 상호호혜적으로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연결(Bridging) 사회적 자본’과 ‘관계(Linking) 사회적 자본’의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더욱 중요해 보인다.

ⓒ자치와협동

‘4대 사회적 자본 입구 및 출구전략’으로 ‘마을살이’를

 이같은 마을공동체 사업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으로 ‘4대 사회적 자본 입구 및 출구전략’을 제안한다.

최우선 과제는 ‘인적 사회적 자본’ 육성을 통한 입구전략이다. 지금 우리 마을만들기 또는 마을공동체사업의 현장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은 있으되 제 일처럼 일을 잘 할 사람, 오래 지속가능하게 쓸 만한 인적 자본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지역사회 공동체 사업을 추진하는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과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각 영역별, 각 업무분야별 전문인력이 절대 다수 부족하다

그래서 이른바 ‘청장년 지역사회전문가(디자이너)및 생활기술 직업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 마을 공동체(Commune)와 지역사회 공동체(Community), 마을공동체 및 지역사회 기반 사회적경제조직(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농어촌공동체회사 등)을 기획·관리·운영할 ‘일을 열심히, 잘 할 수 있는 전문일꾼’을 발굴 육성하는 중간지원조직 방식의 전담교육기관이 필요하다.

이때 중앙 및 지방 정부는 부지, 건축물 등의 하드웨어와 관리·운영비 등의 예산을, 대학ㆍ연구소 등은 교육프로그램, 지식정보 컨텐츠, 교사, 멘토 등의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를 투자하는 상호호혜적 컨소시엄 방식의 프로젝트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야 그 학교에서 공부하는 청장년 학생들은 학비와 먹고 사는 걱정에서 벗어나 학업에 전념할 수 있다. 오로지 ‘먹고 살수 있는 기술을 충분히 익혀 지역사회의 마을주민으로 충분히 정착해 생활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제안은 ‘물적 사회적 자본’ 육성 입구전략이다. 공동화되는 도심도 그렇지만 특히 전국 농촌지역에는 유휴시설이 산재하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방만하게 무계획적으로 자행된 농촌지역개발사업의 후유증이자 잔해이다. 새로 토건사업을 벌일 필요 없이 기존의 시설을 귀농·귀촌인의 농촌창업과 원주민의 마을공동체사업등을 추진하는 데 ‘물적 사회적 자본’으로 요긴하게 재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른바 ‘유휴시설 지역공유 사회적경제 자산은행’을 설립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 마을기업,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영농조합 등 공동체사업 협동경영체를 중심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추진하는 곳에 각종 유휴시설 자산을 장기저리 임대, 저가할인 매각, 시설 매입 및 초기 운전자금 지원 등의 효과적인 정책지원을 할 수 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출구전략이다. 이미 판이 벌어지고 망가진 마을도 포기할 수 없다. 수리하고 재생해야한다. 막다른 길, 깊은 수렁에서 잘 빠져나올 수 있도록도와야 한다.

우선 ‘조직적 사회적 자본’ 육성을 위한 출구전략이 시급하다. 기존의 마을단위 또는 권역단위로 주로 이루어지는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데 주민역량의 한계, 규모의 경제 부적합 등으로 인한 불안요인, 실패요인이 상존했다. 그런 위험요인을 아예 근본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초지자체 등 지역단위 ‘공동체사업협동경영체’ 대안 모델을 전향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가령 진안군민들이 공동 출자하고 지자체가 지원해 로컬푸드직매장, 농가레스토랑, 잡곡가공장 등의 마을공동체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진안군민주식회사 같은 선도사례를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끝으로 ‘플랫폼형 사회적 자본’ 육성 출구전략이다. 마을사업 현장에서 그 공간이 그 공간,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굳이 마을공동체사업과 사회적경제사업이 벽을쌓고 따로 겉돌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둘이 얼마든지 일심동체로 함께 갈 수 있다. 사회적경제는 정책집행의 수단과 경로로, 마을공동체 사업은 궁극적 가치지향점이자 목적지로 위상과 사업체계를 재설정하면 된다, 사회적경제조직 중심의 마을공동체사업이라는 연계 융합형 사업구조로 재설계하면 된다.

이렇게 학교, 은행 등의 ‘사회적 자본 발전소’를 통해새로 시작하고, 조합, 플랫폼 등 ‘사회적 자본 공장’을 통해 다시 빠져나오면 된다. 그러면 사람이 너무 많이모여 살아 생기는 도시 ‘동네’ 문제, 사람이 너무 없어 생기는 농촌의 ‘마을’ 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이 서로 다투지 않고, 모두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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