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개별 주식의 시대…ETF 왕자 누구?
삼성, 미래에셋 용호상박…KB,한투 추격

위기였던 코로나19를 지나며 금융권은 자산가치의 상승 덕에 뜻하지 않은 수혜를 누렸습니다. 이제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막을 내리고 거품이 걷히자, 금융회사들은 위기관리능력 차별화에 따른 진정한 승자를 가릴 출반선에 섰습니다. 스트레이트뉴스가 각 업권별 상황을 짚어보고 위기 돌파를 위한 기업들의 노력을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국내 ETF시장 규모 추이(출처=한국거래소) 
국내 ETF시장 규모 추이(출처=한국거래소) 

◆ 훌쩍 커버린 ETF 시장

상장지수펀드(ETF, Exchange Traded Fund) 시장이 대세 상품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ETF는 말 그대로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를 거래하기 편하게 상장시킨 상품으로, 개별 종목 투자가 가질 수 있는 집중 투자에서 벗어나 투자자가 추구하는 컨셉별로 이른바 ‘바스켓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개별종목 투자와 일반 펀드투자의 장점을 결합한 상품이라 볼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ETF 순자산가치 총액은 74조6886억 원 수준으로, 코스피내 비중이 3.53% 수준이다. 하지만 일평균 거래대금은 2조7182억 원으로,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의 28.44%에 이를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상품으로 떠올랐다. 상장 종목수만도 569개에 이른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주식의 시대를 거쳐 펀드의 시대를 지나 바야흐로 ETF의 시대가 왔다”며, “지난 2년여 동안 투자자들이 주식투자에 눈을 뜨며 자신만의 투자스타일을 찾는 과정에서 시장 전체, 유망 섹터, 글로벌 등 컨셉에 맞는 투자를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ETF 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ETF시장 부동의 1위 삼성자산운용 서봉균 대표(제공=삼성자산운용)
ETF시장 부동의 1위 삼성자산운용 서봉균 대표(제공=삼성자산운용)

◆ETF 시장…쫓는 자와 쫓기는 자

ETF시장은 한때 삼성자산운용의 독무대였다.

2002년 국내에 ETF가 도입될 때부터 삼성자산운용은 지배적 사업자로서 한번도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독점체제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것은 후발주자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었다. 여전히 5월말 현재 전체 시장 규모는 순자산가치(NAV) 기준으로 삼성자산운용(31조878억 원)은 미래에셋자산운용(27조8034억 원)을 앞선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인 주식형ETF만 놓고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 3월 17일 기준으로 주식형ETF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16조4656억 원)은 삼성자산운용(16조2289억 원)을 넘어서며 시장의 변화를 예고했다.

삼성자산운용에 도전장을 냈지만 미래에셋으로서도 여기까지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코덱스(KODEX)라는 삼성의 브랜드가 이미 시장에 자리잡은 상황에서 타이거(TIGER)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수수료를 과감하게 내리는 등 공격적인 영업을 펼쳤지만, 결국 승부는 M&A를 통한 해외시장 개척에서 판가름 낫다는게 업계의 평가다.

지난 4월 브라질 증권거래소 B3에서 진행된 Global X Brazil ETF 상장식(제공=미래에셋자산운용)
지난 4월 브라질 증권거래소 B3에서 진행된 Global X Brazil ETF 상장식(제공=미래에셋자산운용)

◆ 새로운 상품에 목마른 투자자…해외 ETF 운용사를 사버린 미래에셋

지금은 다양한 국내외 섹터형, 테마형, 전략형 ETF가 즐비하지만 초기 시장은 단순히 코스피200을 복제하는 수준에 그쳤다. 단순한 구조에서 시장의 선도 진입자를 이길 방법은 없다.

현재 주요 운용사 ETF본부장 자리를 삼성자산운용 출신들이 독식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단순한 시장에서 노하우를 빨리 이식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자칭 타칭 ETF의 아버지라 불리던 배재규 부사장은 지금은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가 됐다. 선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 김남기 ETF운용부문 대표도 삼성자산운용 공채 출신이다.

작년 말 KB자산운용 출신에서 신한자산운용 CEO로 탈바꿈해 시장을 놀라게 했던 조재민 사장 밑에는 삼성 출신의 김정현 센터장을 비롯 중견 관리자급 인사들이 줄줄이 삼성에서 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장기인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운다.

국내 관리를 최현만 회장에게 맡긴 박현주 회장은 글로벌투자전략가(GISO)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세계를 누비며 먹거리를 찾던 중 해외시장을 한 계단씩 개척하는 것 보다 아예 인수를 해서 키우자는 결론에 이른다. 한 운용사 사장은 “ETF 시장이 커질 것을 내다본 안목도 대단하지만, 그런 베팅을 할 수 있는 건 오너 회사가 가진 장점”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국내 ETF부문과는 별도로 해외부문을 관리한다. 자회사로 ‘미래에셋글로벌 ETF Holdings’를 두고 여러 ETF 자회사들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기고 있다.

미래에셋은 지난 15일 아시아 3대 ETF시장인 호주 7위(AUM 기준) ETF운용사 ‘ETF Securities’를 인수했다. 지난 2003년 전세계 최초로 실물 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C상품을 만든 그래엄 터크웰(Graham Tuckwell)이 이끌어온 회사로 ETF를 활용한 연금시장 노하우까지 얻을 수 있는 M&A로 평가된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인수는 핵심 ETF 관계사인 글로벌X가 그동안 벌어들인 자금을 투자해 지분 45%를 인수하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며, “글로벌 시장을 직접 진출하되 노하우가 쌓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시장은 아예 현지 유망 회사를 합리적인 가격에 인수해 키워간다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운용사 마케팅본부장은 “서학개미로 불리는 해외투자자들이 해외종목에 익숙지는 않지만 특정 섹터의 성장을 분산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국내에서 가장 글로벌 네트워크가 좋은 미래에셋의 상품으로 몰리는 분위기”라며, “전체 ETF시장에서 미래에셋 비중만 점점 커지며 삼성을 따라잡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삼성자산운용 부사장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로 취임한 'ETF의 아버지' 배재규 대표(제공=한국투자신탁운용)
지난 2월 삼성자산운용 부사장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로 취임한 'ETF의 아버지' 배재규 대표(제공=한국투자신탁운용)

◆ 진격의 나팔을 울리는 한국투자신탁운용

과거 미래에셋에 이어 삼성자산운용과 어깨를 나란히하던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주식형펀드의 시대가 저물고 ETF가 부상하는 흐름을 놓쳤다. 지난 5월 순자산가치 기준 시장점유율(M/S_은 삼성자산(41.62%), 미래에셋자산(37.23%), KB자산(7.56%)로 빅3를 제외한 나머지 운용사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4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M/S는 4.63%에 그친다. 그 뒤를 키움투자자산운용, NH아문디, 한화자산, 신한자산 등이 비슷한 규모로 뒤를 잇고 있다.

지난 1974년 국내 최초의 투자신탁회사로 펀드 문화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한투운용으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투자신탁운용은 7년간 회사를 이끌었던 조홍래 전 대표를 대신해 삼성자산운용 부사장으로 ETF 산파역할을 한 배재규 대표를 연초 사장 자리에 앉히고 공격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 2월 취임식에서 배 대표는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큰 기업(Big Company)을 넘어 위대한 기업(Great Company)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며 “한투운용이 오랜 기간 좋은 성과를 보여온 액티브 주식형 펀드와 채권형 펀드 운용의 위상은 지속 유지하고 ETF와 TDF, OCIO에서 큰 폭의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변화하자”고 말했다.

취임 일성은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달 초 한투운용은 배 대표 취임 후 첫 조직개편을 통해 마케팅, 상품개발, 글로벌 운용역량 강화에 나섰다.

대표이사 직속으로 ‘디지털ETF마케팅본부’를 신설해 기존의 ‘마케팅본부’와 차별화된 디지털을 활용한 다양한 채널공략, ETF 마케팅에 무게중심을 둘 것으로 보인다.

본부장에는 홍콩계 ETF운용사 프리미어파트너스(Premia Partners) 출신의 김찬영 전 이사가 선임됐다. 개인과 기관, 외국인 등 투자자별 맞춤 컨설팅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투운용 관계자는 “배 대표는 투자자 교육과 마케팅의 중요성을 수시로 강조한다”며, “톱다운으로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기 보단 현업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후 이를 실제 액션에 반영하는 모습으로 조직을 바꿔가고 있어 회사 분위기가 고무적으로 변했다는 임직원들의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상품 라인업도 정비에 들어갔다.

시장 급락 속에서 잠시 숨을 골랐던 한투운용은 이달 말 KINDEX원자력테마딥서치와 글로벌TOP10블룸버그ETF를 시장에 출격시킨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 테마형 상품과 가격 조정이 있었던 대표 상품을 담은 ETF를 추가해 투자자 선택을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이다.

상반기를 마치고 7월부터는 배 대표가 강조한 또다른 시장인 연금 디폴트옵션 도입이 기다리고 있다. 연금시장에서 차별화된 수익률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시스템 정비가 한투운용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운용사의 공통 숙제인 TDF와 기관들의 자금 운용인 OCIO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조직개편이 있을 것으로 안팎의 기대가 나온다.

삼성자산운용 리서치센터장 출신으로 배재규호 자산배분전략센터장으로 내정된 박희운 센터장. SNS를 통해 한투운용 취임 전 구상을 위해 여행중임을 알렸다.(출처=박희운 센터장 SNS)
삼성자산운용 리서치센터장 출신으로 배재규호 자산배분전략센터장으로 내정된 박희운 센터장. SNS를 통해 한투운용 취임 전 구상을 위해 여행중임을 알렸다.(출처=박희운 센터장 SNS)

그 중 솔루션운용본부를 이끌 베테랑이 몸을 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삼성투자신탁운용 리서치팀장, 유진투자증권과 KTB투자증권(현 다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하고 2014년부터 다시 삼성자산운용 리서치센터장으로 복귀, 자산배분전략센터장을 끝으로 삼성을 떠났던 박희운 센터장의 복귀가 내정돼 있다.

바이 사이드와 셀 사이드를 모두 겪은 백전 노장이자 배재규 대표와는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운용사 대표는 “증권사 뿐 아니라 운용사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업계 순위는 늘 이런 위기 속에서 바뀌지 결코 태평성대에 바뀌지 않는다”며, “이제 ETF시장을 놓치고 메이저 운용사란 타이틀을 가져갈 수 없는 만큼 자리를 지키려는 회사와 올라서려는 회사 사이에 총성없는 전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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