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 STO 연계한 수익원 창출 기대
카드와 저축은행에겐 경쟁 상대 추가 진입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와 송금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면서 금융업권 내 이해관계가 재정립되고 있다. 결제·정산의 중개 단계를 줄이고 수수료를 낮출 수 있는 구조적 특성 때문에 카드업과 일부 저축은행·은행은 수익 기반이 흔들릴 수 있고, 반대로 증권업은 토큰증권(STO) 확산과 맞물려 새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스테이블코인 상용화 전망, 긴장하는 금융권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 주도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가 누적되면서 카드사의 핵심 수익원인 가맹점 수수료 이익이 장기간 정체돼 왔고, 영업환경은 더 빡빡해졌다. 올해들어 소상공인·중소가맹점 대상 카드수수료율이 추가로 낮아졌고(신용 0.41.45%, 체크 0.15~1.15% 구간), 세부 구간별 인하도 2월부터 적용됐다.
이런 흐름 속에 카드사들의 상반기 합산 순이익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를 기록했고, 고금리·서민부채 구조조정 여파로 연체율 부담도 높아졌다. 1분기에는 주요 카드사의 연체율이 10년 만의 최고점 수준으로 치솟았고, 8월에는 정부의 ‘부실채권 정리(배드뱅크) 구상’에 따른 기여도 문제로 경계감이 더해졌다.
여기에 결제 인프라의 경쟁 구도도 달라졌다. 실시간 계좌이체 기반 결제가 커머스와 간편결제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고, 선구매·후지불(BNPL)은 성장 전망과 회의론이 공존한다. 국내 BNPL 신규 결제가 2년 새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진단이 있는 반면, 중·장기론에선 두 자릿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어느 쪽이든 결제 시장의 파편화는 카드 중심의 ‘단일 파이’가 줄어드는 압력으로 작동한다.
카드업이 처한 현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상용화는 ‘수수료·정산·위험관리’ 세 축에서 구조적 도전장이 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상에서 결제와 청산이 이어지는 만큼 중개 단계가 줄어 전통 카드 네트워크 대비 비용·시간 절감 효과가 크다.
이정현 나이스신용평가 금융SF평가본부 수석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은 거래 단계 축소와 수수료 절감을 통해 전통적인 신용카드 결제 구조를 잠식할 수 있다”며 “이는 카드사의 주요 수익원인 가맹점 수수료 기반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도 결제·송금 영역에서 스테이블코인과 맞붙으면 불리하다. 이 연구원은 “저축은행은 결제·송금 부문에서 스테이블코인과 직접 경쟁에 직면할 수 있으며, 디지털 자산 인프라 확보에 뒤처질 경우 고객 이탈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저축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상표 출원이나 빅테크와의 제휴를 모색하지만, 제도화 이전에는 사업화를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기 어렵다는 냉정한 평가가 따른다.
은행권의 경우, 이중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이 은행에 예치되면 단기적으로는 수탁 비즈니스가 생기지만, 결제가 계좌기반·토큰기반으로 다변화되면 예금 기반이 축소되고 예대마진 모델엔 압박이 커진다.
카드론 등 고위험·고수익 영역을 카드사가 키우는 동안 자산 건전성 부담은 높아졌고, 금리·가계부채 구조조정 사이클에 따라 연체율은 큰 폭으로 출렁였다. 시장에선 올해 카드사의 자산 성장세가 둔화되고, 구매대금보다는 카드대출 위주로 성장하는 ‘질적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 증권업, STO 결합으로 ‘발행–유통–보관’ 수익 창출 기회
반면 증권업은 기회가 크다. 스테이블코인이 STO(토큰증권)와 결합하면 ‘발행-유통-보관’ 전 과정에서 새로운 수익원이 열린다는 것이다. 공모·사모를 아우르는 토큰증권 발행 주관, 온체인 유통 플랫폼 운영, 커스터디(위탁관리), 담보관리·레포(환매조건부 매매) 등 전통 증권업의 기능이 디지털 자산 시장으로 확장된다.
이정현 연구원은 “토큰증권 발행 주관, 유통 플랫폼, 디지털 자산 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에서 증권사는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며 “특히 제도권 내에서 STO 인프라가 확산되면 종합 디지털 자산 서비스 제공자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감독의 방향성도 변수다. 각국은 발행주체 적격성, 100%에 가까운 준비자산, 상시 1 대 1 상환, 공시·감독 체계를 빠르게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법제화 논의를 본궤도에 올렸고, 유럽연합은 미카법(MiCA)으로 스테이블코인의 제도적 지위를 부여했다. 홍콩은 면허제를 시행하고 있고, 일본은 은행·신탁사 중심의 발행만 허용하는 등 보수적 트랙을 택했다.
국내에선 지난달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치안정형 디지털자산의 발행 및 유통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자산의 대표적 금융 인프라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법제화와 제도권 편입 과정에서 평가해야 할 신용 리스크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준비자산의 질·유동성, 발행기관 지배구조, 상환 약속의 이행 능력이 흔들리면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테라·루나 사태가 보여준 바처럼 설계 취약성은 ‘순식간에 현실화되는 리스크’라는 지적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의 도입은 결제라는 ‘현금창출의 심장부’를 건드린다. 카드·은행의 기존 파이는 RTP, 간편결제, BNPL, 그리고 스테이블코인까지 경쟁자가 늘어 파편화되고, 규제는 소비자 보호·수수료 인하·불공정 방지로 수익성에 더 엄격해졌다.
상반기 기준으로도 카드사들은 수익성 악화와 연체율 부담을 동시에 겪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대형사는 데이터·네트워크·파이낸싱을 묶어 방어에 나설 수 있지만, 중소형사는 제휴·화이트라벨(시스템 복제)·특화영역(법인·B2B·승인·정산)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디지털자산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 안전성과 상환 능력을 사실상 실시간으로 검증·공시하는 인프라를 갖추고, 결제·정산·청산 데이터 표준화를 통해 온·오프체인 고객확인의무(AML)와 자금세탁방지(KYC)를 일관되게 적용하며, 개인·소상공인·중소기업이 합리적 담보·상환 조건으로 제도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디지털 포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조건이 갖춰져야 합법적 스테이블코인이 합법적 공매도처럼 가격발견과 유동성에 기여하는 본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덧붙였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들이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을 마련하고 제도권 편입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는 경우 안정성과 유동성을 높이기 위한 적정한 방안이 마련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