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정치 리스크, 시장 각인 우려 부상
산업현장 휴머노이드 투입 기대, 로봇주 주가 상승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로 노동계는 환영했지만 재계와 시장은 불확실성 확대를 우려하며 긴장하고 있다. 코스피는 파월 의장의 완화 시그널에도 정책 리스크와 성장성 둔화 우려가 겹쳐 투자심리가 약화됐고, 풍선효과로 로봇주가 급등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정부는 6개월 유예기간 동안 보완 입법을 예고했지만, 법 취지와 시장 안정성 사이의 균형이 향후 과제로 떠올랐다.
◇ 노란봉투법 환호한 노동계·우려하는 재계…전운 감도는 시장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9시 30분 현재 전장보다 0.76%(24.0포인트) 오른 3192.73을 나타내고 있다. 주말 사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통화정책 완화 메시지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잭슨홀 미팅을 앞두고 시장의 경계심리가 높아졌고, 차익 심리가 강해지면서 주도주였던 조선, 방산, 원전, 인공지능(AI) 기술주 등의 변동성이 확대됐다”면서 “지수 고점 부근에서 악재에 민감해진 국면이었다”고 말했다.
국내시장에선 연준의 통화정책 완화 기대감보다 국내 기업들의 성장성에 대한 펀더멘탈을 더욱 크게 우려하는 실정이다.
24일,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은 오랜 갈등의 결과물을 밀어 올렸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법안이 재석 186명 가운데 찬성 183표, 반대 3표로 통과된 것이다. 반대표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법안이 갖는 정치적 무게는 드러난다. 민주노총은 곧바로 “20년 투쟁의 결실”이라는 표현으로 환영했고, 야당은 노동 기본권 보장의 역사적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순간, 재계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공유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6대 경제단체는 긴급 논평을 내고 “사용자 책임의 범위가 모호하게 넓어져 불필요한 분쟁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치권의 박수와 노동계의 환호 속에서, 기업과 투자자에게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셈이다.
노란봉투법이 던지는 변화의 핵심은 사용자 개념의 확대다. 그동안 고용계약을 맺은 당사자만 사용자로 인정됐지만, 이제는 원청 기업처럼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는 주체도 사용자로 규정된다. 다시 말해,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직접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동시에 손해배상 청구 범위는 크게 제한된다. 폭력이나 불법이 수반되지 않는 한, 파업으로 생긴 손실을 조합원 개인이 짊어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또한 구조조정이나 업무 재편 같은 경영 사안도 노동쟁의의 정당한 사유에 포함되면서, 노조가 경영 전반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근거가 확대됐다. 노동계는 이를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해석했지만, 재계 입장에서 보면 수백 개 하청 노조와의 동시 교섭이라는 ‘불가능한 수학’을 풀어야 하는 셈이다.
재계에선 “최소 1년 이상의 유예가 필요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과거 복수노조 허용이나 정년 연장 제도처럼 충격이 큰 정책일수록 충분한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보완이 부족하다면, 노란봉투법은 노동권 확대의 상징이 아니라 또 하나의 정치 리스크로 시장에 각인될 가능성이 크다.
◇ ‘코스피 5000’ 공약과 법·제도 리스크 충돌…투자심리 흔들린다
문제는 정치적 논리와 시장의 반응이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데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자본시장을 국가 성장 동력의 상징으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꿈꾸는 ‘코스피 5000’은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그것은 국가 경제의 자신감이자 글로벌 자본시장에서의 위상 회복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숫자가 현실이 되려면 시장의 신뢰와 정책의 일관성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개인 투자자 커뮤니티에는 “3000선 붕괴가 머지않았다”는 비관적 전망이 퍼졌다. 일부에선 ‘외국인이 국내시장을 떠나는 악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투자 심리가 취약해진 것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국장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가 노동권 확대를 위해 증시를 희생하고 있다는 날 선 비판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우려했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투자 리스크 확대가 외국인 자금 유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최근 2차 상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해당 법안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분리 선출 감사위원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차 상법개정안이 표결될 예정이며 정부의 대주주 양도세도 조만간 발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된 이후에는 정책 모멘텀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노란봉투법 통과 풍선효과, 로봇주 급부상?
현대차는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생산시설에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틀라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아틀라스는 그룹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나믹스가 도요타리서치연구소와 공동으로 개발한 로봇으로 거대행동모델(LBM)을 적용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강화했다.
증권업계에선 산업현장에서 로봇들의 노동인력 대체 가능성을 전망한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차 국내 공장의 경우 평균 시간당 임금은 약 38달러 수준”이라며 “노조 영향력이 큰 미국 빅3 자동차 업체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지만, 글로벌 경쟁력 차원에서 여전히 높은 비용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날 오전 9시 42분 기준 로봇 관련주인 하이젠알앤엠이 21.88%, 원익홀딩스가 14.39%, 레인보우로보틱스가 8.56% 뛰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에서 로봇들이 공개되면 기대감들을 채울 수 있는 요인이 되기는 하겠지만 아직 출시되거나 업그레이드되는 부분들이 없어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양 연구원은 “자본력, 기술력, 관점, 경험, 상업화 능력에 있어 선도국들 대비 부족한 부분들이 많아 정책적 지원을 많이 해야된다”며 “단순히 로봇 전문기업들만으로 해결하려 하면 안되고 대기업들도 투자를 많이 하고 그런 모습들이 나와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미 통과된 법안, ‘어떻게 안착시킬 것인가’로 무게 이동
증권업계 다른 관계자는 “시장 참여자가 한국 정부에 원하는 것은 명확하다”며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차원에서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는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동시에 흔들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노란봉투법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며 “정의와 성장, 권리와 안정,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사회 전체가 갈라져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요한 사실은, 이 법이 이미 통과됐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찬반’이 아니라 ‘어떻게 연착륙시킬 것인가’에 있다. 정치권이 노동계의 목소리만 듣는다면 시장은 등을 돌릴 것이다. 반대로 재계의 우려만 받아들인다면 사회적 갈등은 더 격화될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결국 한국 사회가 어느 쪽으로 무게를 두고 조정하느냐에 따라 노동권 진전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고, 코스피 5000 시대를 멀어지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로 전망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하청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무리한 손배소 위협에서 벗어나면 노동시장은 장기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 해외 선진국에서도 법령상 ‘사용자’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판례가 적지 않다. 따라서 법 취지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시점’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반도체 업황 불확실성, 금리 하향 조정 지연 등 대외 변수로 시장이 흔들리는 와중에, 정부가 강행 처리한 법은 증시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다. 이른바 ‘노동 정의’라는 명분과 ‘자본시장 안정’이라는 현실 사이의 균열이 더 벌어지는 셈이다.
한편 정부는 6개월 유예 기간동안 태스크포스를 꾸려 재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보완 입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