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투자 확대에도 저출산·고령화·구조 개혁 지연에 GDP 목표 후퇴
정부가 인공지능(AI)과 초혁신경제를 중심축으로 한 새로운 성장 전략을 본격화하면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 시대의 도래 시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불과 7년 전만 해도 2023년이면 4만 달러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저출산·고령화의 심화, 제조업 혁신 정체 등이 겹치면서 현실은 오히려 후퇴했다.
14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GDP 4만 달러 달성은 2027년 가능할 것으로 추산됐다.
2018년 국회예산정책처는 2023년 즈음 1인당 GDP가 4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봤다. 그러나 현재까지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달성 시점은 점차 늦춰지고 있다. 2021년에는 한국경제연구원이 국내 GDP 4만 달러 달성 시점을 2028년으로 예측했으며, 올해 IMF는 2029년 전망을 내놨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은 2027년 달성을 전제로 하지만, 원화 약세가 이어질 경우 이 역시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국의 성장세가 둔화된 사이, 대만은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기준 대만의 1인당 GDP는 3만8066달러로 한국(3만7430달러)을 앞질렀고, 이는 2003년 이후 22년 만에 재역전되는 상황이다. 특히 대만은 AI 산업을 국가 주력 산업으로 설정하고 ‘AI 섬’ 전략을 밀어붙이며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이 8%를 넘기는 등 초고속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이 4만 달러 문턱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 저출산·고령화다. 정부는 수차례 출산율 반등을 예측했지만, 실현된 적은 거의 없다. 2016년 통계청은 합계출산율이 1.18명까지 내려간 후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후 8년 연속 하락세가 이어졌다. 2023년에는 역대 최저치인 0.72명을 기록했고, 2024년에야 소폭 상승한 0.75명으로 돌아섰을 뿐이다.
제조업 기반의 혁신 정체도 문제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은 선박, 석유제품, 승용차, 메모리 반도체에 머물러 있다. 시스템 반도체 등 미래형 첨단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은 정체 상태에 빠졌고, 잠재성장률도 2010년대 초반 3%대에서 현재는 1%대 후반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정체를 반등시킬 해법으로 AI와 초혁신경제를 지목하고 있다. 정부는 재정·금융·세제를 총동원해 AI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려 경제 전반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구조 개혁 없는 기술 중심 전략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 고갈, 세수 기반 약화, 노동시장 유연화 부족 등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여전히 뒷전으로 밀려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재정을 초혁신 아이템 등 생산성이 높은 분야에 투자해 성과를 낼 것”이라며 구조 개혁보다는 기술 기반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며 “그러나 구조 개혁 없이 기술만으로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전략은 현실과 괴리된 선택일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