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개 압박...급격한 쏠림현상때만 미세조정
김동연 부총리, IMF 총재-미 재무 만나 협의

미국의 환율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미국의 약달러와 국내 외환보유액이 증가하고 있어 급격한 원화 절상 시에도 우리 외환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여력은 마땅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미국으로 날아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부장관 등과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주기와 방법을 두고 본격적인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출처 뉴시스
출처 뉴시스

이에 우리 정부가 '환율 주권'을 지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환율 주권이란 급격한 쏠림 현상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에 소신 있게 나설 수 있는지 여부로 판단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말 1207.7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070.5원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올해 연저점은 1050원대까지 낮아졌다. 1050원은 지난 2014년 10월 이후 최저치다.

환율에 대한 향후 전망은 다양하나 원화 가치를 더 높일 재료들은 여전히 많다. 먼저 약(弱)달러 추세다. 달러화의 향방은 원화 가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변수 중 하나다.

도날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약달러를 선호한다. 약달러가 자국의 교역적자 해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그간 약달러 고수에 대한 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왔다.

물론 G2간 무역분쟁으로 안전자산 선호심리를 키울 수 있다는 점, 미국의 경제 성장세나 정책금리 상승여력이 여타 국가에 비해 뚜렷하게 나타나는 점 등은 약달러를 제한할 수 있다.

다만 이같은 요인이 추세적인 움직임을 반전시킬 지는 미지수다. 무역분쟁의 경우 전면적인 '무역전쟁'까지 확산되지는 않으리란 게 대체의 시각인 데다 미국의 재정·무역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도 약달러 전망에 힘을 보탠다.

급속도로 가까워진 남북관계에 따른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도 원화 절상 요인이다. 이달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5월 말엔 북·미 정상이 만난다. 현재 언급되는 종전 협정 등 가시적 성과가 나온다면 원화 강세 압력은 더욱 탄력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원화 절상이 급격히 이뤄지더라도 우리 외환당국이 대응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이 외환시장 개입내역의 공개를 두고 우리 외환당국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가 발표한 4월 환율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명목 GDP 대비 0.6%로 기준치와는 차이를 보였음에도 불구, 미 재무부는 계속해서 우리 외환당국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동연 부총리는 오는 21일(현지시간)까지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회의와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 춘계회의에 참석해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와 관련해 논의할 전망이다.

G20 재무장관회의 및 IMF/WB 춘계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중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9일(현지시각) IMF 본부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접견, 면담에 앞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G20 재무장관회의 및 IMF/WB 춘계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중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9일(현지시각) IMF 본부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접견, 면담에 앞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현재 정부는 환율의 경우 시장에 맡기되 급격한 쏠림 현상이 발생할 때 '스무딩 오퍼레이션'에 나서고 있다. 이때 개입 내역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IMF 등은 한국 정부 측에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할 것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특히 미국 재무부는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월 사이를 주목했다. 당시 3개월 간 원·달러 환율이 60원 이상 내려오면서 정부의 스무딩 오퍼레이션 시행은 불가피했다. 그런데도 한국 정책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마땅치 않아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 빼고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 부담을 느끼면서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김 부총리는 지난 13일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여부와 관련해 "외환시장 공개여부는 미국과 쌍무적으로 얘기할 내용은 아니다"라며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만나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루 뒤인 14일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환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무질서한 시장 상황 등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돼야 한다"며 "투명하고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김 부총리는 이틀 뒤인 16일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는) 외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우리의 검토 하에서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 환율 주권은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면 대외신인도나 환율보고서의 평가가 훨씬 높아질 것"이라며 "우리 정책 방향에 맞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경제상황과 환율시장 구조나 움직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은 공개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공개 수위를 낮은 수준으로 조절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정책당국이 외환시장의 안정성 제고를 위해 시행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마저 미국 재무부가 외환시장 개입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환율 주권을 지키겠다는 것은 필요할 때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미국이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오인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외환시장 참여가 소극적이 될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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