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대행의 대행’..임기 이틀 만에 제주항공 참사
국민 불안 폭증..최 권한대행, 희망과 신뢰 메시지 필요
“우선, 제가 굳게 믿고 있는 점을 하나 강조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후퇴를 전진으로 반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노력들을 마비시키는 막연하고, 이유 없고, 근거 없는 두려움 말입니다.”
1933년, 프랭클리 루스벨트가 대통령 취임 당시 연설한 내용이다. 그의 연설은 대공황으로 깊은 불황에 빠진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준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29년 10월, 뉴욕 증권거래소의 주가 폭락으로 세계 경제 대공황이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은행 파산, 실업률 폭증, 기업 도산 등이 이어지며 국민들의 경제적 삶이 파괴됐다.
1933년 루스벨트가 취임할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25%에 달했고, 농부들은 땅을 잃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은행 시스템이 붕괴 직전에 있었고, 수많은 가족이 집을 잃거나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즉,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당선된 인물이다. 그는 연방정부의 강력한 개입으로 경제를 되살리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한 인물이다.
루스벨트가 대통령 취임 당시 강조한 ‘두려움 그 자체(Fear Itself)’는 대공황으로 인해 만연했던 국민들의 공포와 불안을 상징한다. 그는 “공포와 비관주의가 오히려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두려움 대신 실질적인 행동을 통해 상황을 개선하자”고 강조했다.
그는 취임 후 뉴딜정책(New Deal)을 통해 굶주린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은행 시스템을 안정시키며, 경제 위기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혁했다. 아마도 루스벨트가 연설문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희망과 신뢰’였을 것이다.
경제학은 표면적으로 수학과 공학의 영역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실제 ‘맨큐의 경제학’을 읽어보면, 많은 이론이 결국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
현재 한국 경제는 고물가와 고환율, 수출 둔화 그리고 정치적 혼란이라는 사중고에 직면했다. 안그래도 사중고를 겪는 상황에서 제주항공 참사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대한민국 시장 전반의 분위기가 더욱 어두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국회의 한덕수 총리 탄핵으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지 이틀만인 29일 제주항공 참사까지 발생했다. 최 대행은 경제관료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대통령과 총리의 부재로 재난사고 대응을 처음 총괄했다.
일각에선 ‘최 권한대행이 헤드쿼터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그가 권한대행을 맡은 지 이틀 만에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모든 원인과 책임을 그에게 요구하는 건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민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대행의 대행' 체제와 경기지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치며 국민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산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신규 원전 건설, 동해 가스전 시추 등 ‘윤석열표’ 정책은 야당의 반발 속에 표류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높다.
한국은행은 27일 5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증권(RP)을 추가 매입해 이날까지 총 38조6000억원의 단기유동성을 공급했다.
이날 이창용 총재는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9778억달러 수준의 순대외금융자산 규모(3분기 말 기준)와 4154억달러의 외환보유액(11월 말 기준) 및 27조원 수준의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시장안정프로그램 잔액 등을 볼 때 정부·한은의 대응 여력이 여전히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국제사회가 한국의 국정 컨트롤타워가 조속히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대외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우리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충격이 더해질 수 있는 바 국내 정치상황이 조속히 안정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처럼 정치적 불안이 지속된다면 국제신용평가사는 결국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출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25년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시장과 학계에선 내년도 경제가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최 권한대행이 앞장서 국민들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희망과 신뢰’로 바꾸는 변곡점일 것이다.
루스벨트가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한 것 처럼, 최 권한대행이 국민들 마음에 자리 잡은 두려움을 ‘희망과 신뢰’로 바꿀 메시지를 주기를 기대한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