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당시 각오 상기해야

조성진 기자
조성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 발 비상계엄령 사태가 일어난지 사흘이 지났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탄핵정국 상황이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떨어트리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와 경제 이슈를 따로 분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6일 송재창 한국은행 금융통계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10월 경상수지가 97억8000만 달러 흑자를 시현했다”면서도 “최근 비상계엄령 선포 사태가 조기에 수습된 측면이 있고 투자심리 역시 영향이 있었지만 단기에 그쳤기 때문에 향후 경상수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발언은 공통적으로 결과론에 근거하고 화재가 초기에 진압됐으니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된다.

끔찍한 시나리오지만, 만약 비상계엄령 선포가 조기에 해소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당시 긴박했던 환율흐름을 보면, 윤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생중계 하기 시작한 3일 저녁 10시 28분 기준 서울외환거래소에서 원·달러 환율은 1403.20원에 거래됐다. 32분 후인 저녁 11시에는 1420.00원에, 11시 30분에는 1427.00원에, 11시 58분에는 1439.20원에 거래됐고, 4일 새벽 00시 17분에는 1446.50원까지 치솟았다. 

대통령 긴급 담화가 시작되기 직전 거래가격(1403.20원) 대비 시간대 별 상승률을 비교하면 ▲3일 밤 11시 1.20% ▲11시 30분 1.70% ▲11시 58분 2.56% ▲4일 새벽 00시 17분 3.08%까지 오른 것으로 계산된다. 

단지 109분 동안 자국 통화가치가 크게 떨어진 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선례를 찾기 어렵다. 걷잡을 수 없이 치솟던 환율은 이후 국회의 비상계엄령 해제안 논의와 가결 소식에 진정됐으나, 6일 오전 9시 5분인 현재도 대통령 담화 직전 거래가(1403.20원) 대비 0.83% 높은 1414.80원에 거래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국회에서 비상계엄령 해제안이 가결되지 않았을 때, 국내경제가 얼마나 큰 타격을 입었을 지에 대한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사태와 109분 간 원·달러 환율 변화 폭을 프랑스인 수학자인 브누아 망델브로의 프렉털(Fractal) 이론 중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 부분을 접목해 계산해 볼 여지가 있다. 자기유사성 이론이란, 특정 사건이 발생하며 작은 시간 단위에서의 비선형적인 변동성이 누적되면, 더 큰 시간 단위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망델브로는 1963년 ‘특정 투기 가격의 변동(The Variation of Certain Speculative Prices)’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시장의 가격 변동은 시간 경과에 따라 자기유사성을 보이며, 변동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고 가속화될 수 있다.

비상계엄령 선포 직후 109분 동안 일어난 3%의 원·달러 환율 급등을 초기 패턴으로 놓고, 이 흐름이 4일 오전 8시(589분)까지 이어졌다고 가정했을 때 추정되는 누적 원·달러 상승률은 16.21%(1630.65원)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록한 1570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물론 같은 날 오전 8시 이후 금융당국의 통화정책 개입과 언론 보도가 본격화 됐더라도 환율이 안정적으로 진정세를 보이기 보단 오히려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치현황 사태에 따라 널뛰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비상계엄군의 정치인 연행과 언론 출판 자유에 대한 폭압이 성공하고 이러한 행태가 일주일 정도만 이어졌더라도 원화 가치는 더욱 크게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후인 약 150분 만에 국회에선 비상계엄령 해제안이 가결됐고, 시장은 빠르게 진정됐다. 이후 한국은행은 금융·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해 60조원 규모의 비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 계획을 밝혔다.

만약 비상계엄령 사태가 지속됐다면, 60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시장에 끊임없이 공급 됐을 것이고 이는 원화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이어졌을 공산이 크다. 

이번 사태에 대해 한마디로 60조원 짜리 ‘오징어게임’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취임사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번 비상계엄 사태만 놓고 보면, 자유민주주의는 비상계엄군에게 위협을 당했고, 시장경제 체제는 붕괴를 직면할 뻔 했으며, 국제사회로 부터 신뢰를 잃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주장처럼 ‘종북좌파 세력을 척결하는 일’이 그토록 중요했더라도 ‘대한민국 5000만 국민과 60조원 플러스 알파 규모의 경제를 볼모로 위험한 도박을 할 만큼 가치가 있었던 일인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다.

대통령 탄핵 만큼은 반대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이날 오전 갑작스럽게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설령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심판과 차기 대통령 선거 일정 등 여전히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국가 지도자의 결정은 항상 국민과 시장이 우선되어야 한다. 맹목적으로 종북좌파 세력 만을 쫓기 보단, 경제적 안정과 민주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금융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