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PF 사태, 거시건전성 정책 미흡이 원인”
“스테이블코인 감독권 요구? 오해...협의체 구성 필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7월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 모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7월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 모습.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5%로 동결하며 부동산시장 과열과 가계대출 급증을 우려해 통화완화 속도를 조절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와 대출 증가가 인하를 제약한 핵심 요인이다. 동시에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해 가계부채 억제에 나섰다.


◆ 다시 부각된 부동산 투자 과열, 한은 통화정책 속도조절


10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현재의 기준금리인 연 2.50%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금통위에선 금통위원들 전원 만장일치로 금리를 동결했다.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가 한동안 이어졌지만, 올해 하반기 첫 회의에서 동결을 택한 것이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최근 가시화된 부동산시장 과열 조짐이 있다. 서울 아파트값은 6월 넷째 주 기준 전주 대비 0.43% 오르며, 약 7년 만에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동시에 가계대출도 지난달 한 달간 6조5000억원 가까이 불어나며, 지난해 10월 이후 최대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금리를 더 낮출 경우,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실제로 이창용 한은 총재는 5월 금리 인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를 너무 빨리 내리면 자산 가격만 자극할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접근을 예고한 바 있다.

한국은행은 작년 말부터 금리 인하에 나서며 내수 경기 회복을 위한 통화 완화를 지속해왔다. 올해 상반기 네 차례 회의 중 일부에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했으며, 이는 건설 경기 부진과 민간소비 둔화, 그리고 미국의 관세정책 여파로 낮아진 성장률 전망(0.8%) 등을 반영한 결과였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과열과 대출 급증은 금리 인하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됐다. 여기에 미국과의 기준금리 차이가 2%포인트 이상 벌어진 상황에서 추가 인하가 외국인 자금 유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정부 역시 금융당국 차원에서 수도권 지역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며 가계부채 확산 차단에 나섰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조치는 서울 등지에서의 대출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그는 “가계부채 문제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리스크는 거시건전성 정책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라며 “말뿐인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집행 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 주도의 건전성 정책은 경기 대응을 우선시하게 돼 강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한계를 지적하며, “정치적 독립성을 바탕으로 한국은행이 거시건전성 정책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은행이 아닌 비은행 금융기관의 위험이 커지는 만큼, 한국은행이 이들에 대한 정보 접근성과 분석 권한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향후 제도 개편 논의에서 한은의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부동산 시장의 전세 제도 역시 사적 부채 기반의 전통적 구조로, 현대 금융시장 환경과 맞지 않는다”며 “수천만원의 금액이 담보 없이 유통되는 현재 전세시장은 안정성 측면에서도 리스크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세를 통한 투자 수요를 차단하는 게 이번 정부의 주요 대책 중 하나였고,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수요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제도적 보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물가 안정·환율 완화… 금리 인하 여지 남긴 한은


물가와 환율 흐름만 놓고 보면 한국은행이 통화 완화에 다시 나설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경기 하강 국면 속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약화되고 외환시장도 비교적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2%를 기록하며 다시 2%대로 올라섰다. 이는 5월 1.9%에서 반등한 수치지만, 전반적으로 올해 상반기 내내 2%대 초반을 유지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한은은 “국제 유가와 환율 안정세가 지속되면 7월에는 물가 오름폭이 다시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며,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2% 안팎에서 등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환율 측면에서도 한층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4월 초 미국의 상호관세 선언 직후 1490원에 육박했던 원/달러 환율은 이후 미중 간 무역 긴장 완화와 달러화 약세 흐름 속에 꾸준히 하락해 6월 말에는 1350원 아래로 떨어졌다. 같은 시기 달러인덱스는 3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이러한 물가와 환율 환경은 한은의 통화완화 재개를 뒷받침하는 배경이 된다. 특히 저성장 흐름은 금리 인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1.9%로 추정했는데, 이는 한은이 5월 발표한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0.8%)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실질 성장률과 잠재 성장률 간의 격차는 곧바로 경기 부양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다만 현재 부동산시장 과열과 가계대출 급증이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고 있는 만큼, 금융안정 리스크가 진정세에 접어들 경우 한은이 통화 완화를 재개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장에서는 하반기 중 금리 인하가 다시 논의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 총재는 “앞으로 소비가 경제심리 개선, 추경 등으로 점차 회복되고 수출은 미국 관세부과 등으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최근 2차 추경 집행으로 GDP 성장률을 0.1%p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 “‘한강 프로젝트’, 오해 많아…민간화폐 발행 시 시장 혼란 우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미래 디지털 경제에 필수적인 요소”라며 “한국은행도 초기부터 이를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다만, “문제는 발행 주체와 방식이며, 민간 또는 비은행이 다수의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다중 민간화폐 체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화폐마다 가치 차이가 생기고, 19세기 민간 화폐 난립기처럼 통화정책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은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 발행하고, 동일한 리스크에는 동일한 규제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은행 이외의 비금융기관이 지급결제와 예금기능을 일부 대체하게 되면 은행 산업의 수익구조와 시스템 안정성에도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총재는 “지급결제를 비은행이 담당하면서 금융기관 간 경쟁 구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 유튜브 화면 캡처.
한국은행 유튜브 화면 캡처.

최근 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한국은행의 입장 표명이 감독권 확보 의도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이 문제는 인허가 권한과 관련된 것이 아니며, 금융위·기재부 등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한국은행이 감독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동일 리스크에는 동일 규제가 적용돼야 한다는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문제를 총괄하는 통합적인 거버넌스 구조가 필요하며, 현재 부처 간 정리가 안 된 상황에서 논의가 지체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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