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금융 ‘역-레드라이닝’ 우려
대출 풍선효과 잡으려다 실수요자만 뭇매
“금융규제 당국이 국민 전체를 신용불량자로 만들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10년 간 기다린 세월이 아깝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사업 취소하고 조합원들에게 돈 모두 환급해줘라.”
경기도의 한 지역주택조합(이하, 지주택)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이 조합은 10년 전부터 아파트 건설 추진을 목적으로 조합원들을 모집했다. 이들이 지주택을 가입한 이유는 모두 같다. 평소 일은 힘들고 월급은 적은데 지주택에서 제시한 부동산 가격은 저렴하기 때문에 내집 마련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란 소박한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여느 지주택이 그렇듯 당초 아파트 착공 계획일정 보다 1년, 또 1년, 그리고 또 1년씩 추가되어 10년을 채웠다. 그 기간 동안 조합원들의 초기 투자비용은 묶여 있었고, 당연히 지자체로부터 공식적인 조합 설립 인가도 받지 못했다.
말 그대로 ‘가칭 조합’에 10년 동안 조합원 자금이 묶였던 것이다. 조합원 중에선 기다리다 지쳐 다른 주택을 매입한 이들도 눈에 띈다.
이들에게 최근 지주택에서 공문이 한 통 날라왔다. 내년 하반기 드디어 아파트 건설을 위한 터파기를 시작할 계획이니 1차 중도금 납부를 준비하라는 내용이다. 10년 넘게 기다린 소식이지만 조합원들은 걱정이 앞선다. 신용점수를 막론하고 2금융권은 물론 1금융권에서도 당장 1000만원 이상 목돈 대출을 받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시장 내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달 9일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이 1주택자 주담대를 전면 중단한 것에 이어 10일에는 신한은행도 이에 동참했다.
현재 금융규제 당국 논리에 따르면, 경기도 외곽에 작은 방 한칸 딸린 내집 마련을 꿈꾸며 10년 동안 지주택이 설립되길 기다린 소시민들은 부동산 투기꾼으로 몰린 상황이다.
당국은 주담대 대출 실수요자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신용대출 쪽으로 옮겨가자, 이번엔 신용대출 제한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1금융권 뿐만 아니라 2금융권의 신용대출 조차 금융규제 당국의 표적이 된 모양이다.
8일 우리은행은 1주택 수요자 주담대 예외 대상에 결혼예정자와 상속자를 추가했다.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 이 조차도 여전히 거칠게 느껴진다.
물론 정부의 행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725조3642억원으로 집계됐다. 7월 말(715조7383억원)보다 9조6259억원 급증한 규모다.
그러나 현재 금융규제 당국의 대출규제 모습을 보면 방향성을 찾기 어렵다. 지난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부동산시장 실수요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주문한 반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은행이 알아서 대출을 규제하라”는 말을 내뱉었다.
처음에는 가계대출을 잡아야 한다는 대의적 명분에 여론도 공감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진정한 목적성이 무엇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마치 금융규제 당국이 자동차 핸들에서 손을 떼고 풀악셀을 밟으며 가계대출을 관리하는 느낌이다.
정부가 주담대는 물론 신용대출까지 막는 움직임을 보이며, 조만간 불법 사금융을 중심으로 ’역-레드라이닝(Reverse Redlining)’ 이슈가 터지진 않을지에 대한 걱정도 매우 크다.
역-레드라이닝이란 금융기관이 전통적으로 대출이나 금융상품을 거부하던 유색인종 및 저소득층 지역에 대해 고금리 대출을 권유하는 것을 뜻한다. 일부 학자들은 과거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촉발한 핵심 원인으로 이를 지목한다.
반대로 레드라이닝(Redlining)은 미국의 금융기관이 유색인종 거주 지역을 대상으로 대출과 보험 등 금융서비스를 공급하지 않고 차별한 것을 뜻한다. 애초에 역-레드라이닝 이슈가 발생한 이유도 레드라이닝 탓에 백인 밀집 지역과 유색인종 밀집 지역에 대한 금융 서비스 기회가 달랐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이 유색인종에게 차별적 대우를 했던 것 처럼, 현재 한국사회는 집을 매수하려는 수요층을 손가락질 하며 매수행위를 죄악시 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시기 집을 매수한 이들은 이미 안정궤도에 올라섰다. 정점이었을 때 보다 가격이 20~30% 빠졌다고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여전히 2019년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당시 문어발 식으로 주담대를 받아 자산을 늘린 이들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금융규제 당국의 자동차에 소시민이 치이지 않도록, 하루 빨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