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통상 불확실성…수출 구조 변화가 기업 신용도 압박”

(왼쪽 세번째) 킴엥 탄 S&P 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총괄.
(왼쪽 세번째) 킴엥 탄 S&P 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총괄.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중동 리스크가 아시아 국가의 재정·신용등급에 중장기적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외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글로벌 무역 둔화와 구조적 부채 리스크로 성장과 금융 건전성 모두 압박받고 있다는 것이다.


◆ “중동 리스크 재부상 시 에너지 수입국 재정에 부담”


2일 S&P는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글로벌 교역 축소, 높아지는 신용도 부담 (Credit Could Cost More In A Less-Trade World)’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기 앞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킴엥 탄 S&P 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총괄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무역정책 변화와 중동 정세 불안이 향후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재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러한 요인은 국가신용등급에도 중기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변수”라고 밝혔다.

그는 먼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를 주요 리스크로 꼽으며 “동아시아 대부분의 수출 주도형 경제는 미국을 최대 고객으로 두고 있다”며 “미국이 자동차, 통신기기, 컴퓨터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해 자국 생산 확대를 추진하면서 해당 품목에 대한 수입을 줄이게 되면, 한국을 비롯한 주요 수출국의 성장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러한 변화는 ‘미국이 사는 양이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부정적인 추세”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모든 품목이 동일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양말이나 신발, 생활용품 등 일부 저가 품목은 수입처를 다양화하기 쉬운 데다 미국 수요 자체의 구조적 비중이 낮기 때문에 타격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요 리스크로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을 언급했다. 그는 “현재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간 갈등은 일시적인 휴전 상태에 있지만, 이란 핵 프로그램이 실제로 얼마나 저지됐는지는 불분명하다”며 “갈등이 재점화될 경우 다시 유가가 급등할 수 있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탄 총괄은 “에너지 소비를 많이 보조하는 정부일수록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은 에너지 보조금 지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유가 상승 시 재정지표에 즉각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에너지 가격 상승은 수입 비용 증가로 이어져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성장을 둔화시키는 이중 효과를 낳는다”며 “이는 신용등급 평가 시 중장기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는 이스라엘 방공망. 연합뉴스 제공.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는 이스라엘 방공망. 연합뉴스 제공.

탄 총괄은 “이처럼 외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아시아 국가는 국내 요인에 기반한 긍정적 등급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며 “구체적 국가별 영향은 각국의 경제구조와 정책 대응 여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루이스 쿠이즈 S&P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올해 무역 둔화와 함께 이미 약한 출발을 보였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성장 압력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1분기 한국의 경제 산출은 전년 동기 대비 소폭 감소했으며, 이런 점에서 한국은 아시아 지역 내에서도 특이하게 눈에 띄는 케이스”라며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은 매우 완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년에는 정부의 재정 확대 등을 반영해 다소 개선될 수 있다”고 밝혔다.

쿠이즈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불확실한 정책과 고율 관세가 주요 변수라고 지적했다.

쿠이즈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잦은 정책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관세는 향후 수개월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며 “성장이 둔화되고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미국 연준(Fed)은 당분간 금리 인하를 유보하고 ‘관망’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에선 최근 몇 년간 실망스러운 흐름이 이어졌고, 앞으로도 미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독일을 중심으로 한 방위 및 인프라 재정 확대는 일부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중국의 경우, 미국의 고율 관세가 수출에 타격을 주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성장률은 여전히 괜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P는 올해 중국의 성장률을 4.3% 수준으로 예측했다.

쿠이즈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 지역 전체에 외부 충격 요인이 지속되겠지만, 내수 수요가 견조한 국가일수록 충격 흡수력이 높다”며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일수록 무역 역풍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미국 정부발 외부 충격은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각국의 내수 회복력과 경제 구조에 따른 대응력이 신용평가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 “비은행권, 부동산 익스포저 집중…충당금 부족이 건전성 위협”


김대현 S&P 아시아태평양 금융기관 신용평가 상무는 “한국 금융산업은 거시 불확실성과 구조적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돼 있으며, 특히 은행과 비은행권 간의 신용 리스크 격차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의 관세 인상, 중동 불안 등 대외 리스크가 한국 금융기관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이는 결국 국내 경기 둔화로 이어져 간접적으로 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은행권은 충분한 손실흡수력을 바탕으로 안정적 신용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새마을금고·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은 여전히 높은 신용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상무는 한국 금융산업이 직면한 두 가지 구조적 리스크로 고위험 가계부채와 양극화된 부동산 시장을 꼽았다.

그는 “가계부채의 문제는 단순한 채무불이행이 아니라, 부동산 편중과 소비 여력 위축을 통해 금융기관의 펀더멘털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구조적”이라며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75% 수준으로, 민간 소비 기여도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부채 구조는 통화정책의 유연성까지 제약해, 금리 인하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정책 대응 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핵심 리스크는 지역 간 부동산 시장의 격차다. 그는 “서울은 가격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지방은 미분양 주택이 누적되고 있다”며 “지방의 악성 미분양은 인구 고령화 및 수도권 인구 집중과 연관돼 있으며, 이는 구조적으로 회복이 어려운 수요 위축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위험은 비은행권에 집중돼 있다. “전체 PF 부실 여신의 약 3분의 2가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에 몰려 있으며, 이들 기관의 충당금 적립 수준은 은행권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추가 충당금 부담이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고, 이는 비은행권의 건전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이어 “최근 몇 년간 금융 리스크가 주로 건설·부동산 중심으로 나타났다면, 앞으로는 내수 중심 중소기업과 자영업 부문에서 신용위험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비은행권의 익스포저가 집중된 업종을 중심으로 연체율 상승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준홍 S&P 아시아태평양 기업신용평가 상무는 “올해들어 S&P가 평가한 한국 주요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방향성은 대체로 부정적이며, 이는 철강·화학·2차전지 등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포스코가 포함된 철강업종, LG화학·한화토탈이 속한 석유화학업종, 그리고 LG에너지솔루션 등 전기차 배터리 산업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실제 신용등급 조정이 이뤄진 사례도 이들 산업군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반도체나 한국전력 등이 포함된 유틸리티 부문은 최근 비교적 양호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상무는 “미국의 경우, 여전히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며, 이로 인해 통상정책 변화가 기업 실적과 신용도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며, “많은 한국 대기업들이 전기차 밸류체인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만큼, 전기차 수요의 변화는 해당 기업들의 신용도에도 즉각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공지능(AI) 기술 산업은 일부 기업에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기존 산업구조에 위협을 주는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며 “변화 속도에 따라 디지털 전환에 뒤처지는 기업은 신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박준홍 상무는 한국사회가 겪을 수 있는 리스크로 글로벌 공급과잉, 특히 중국발 공급 충격을 꼽았다.

박 상무는 “철강, 석유화학, 배터리 등 현재 부진을 겪는 대부분의 업종은 중국발 과잉공급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역 통계를 보면 최근 들어 한국의 미국 의존도는 뚜렷하게 높아진 반면, 중국과의 무역 수지는 적자 전환하는 등 수출 구조가 급변하고 있다”며 “이는 향후 무역 리스크가 더욱 고조될 경우 기업신용도에 구조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 이재명 대통령 정부, 30조원 규모 ‘녹색’ 투자 추진


버트랑 자블리 S&P 아시아태평양 지속가능금융 총괄은 “현재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도 한국의 지속가능금융 시장은 상당히 안정적이며, 성장 잠재력도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지속가능채권 시장 규모는 약 1800억 달러(약 250조원)에 이르며, 구조적으로도 사회적 프로젝트에 50% 이상 자금이 배정되는 등 비교적 안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인 투자자 비중도 30%에 달해 시장 회복력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자블리 총괄은 “한국은 지금까지 전환 스토리에 충분히 열려 있지 않았고, 이에 따라 명확한 자금 수요는 있지만 아직 채워지지 않은 시장 공백이 존재한다”며 “한국 정부가 향후 2~3년간 24만 가구 규모의 공공주택 공급 계획을 추진 중이며, 이와 관련한 금융 수요도 시장 성장에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국민 통합을 이끌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국민 통합을 이끌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자블리 총괄은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4배(120GW)로 늘려야 하며,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부터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도적 기반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형 지속가능공시기준(K-SRS) 도입은 자금 조달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K-택소노미 개선 논의도 병행되고 있는 만큼 시장의 제도적 기반은 탄탄하게 갖춰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 정부가 전임 정부보다 지속가능성에 더욱 우호적인 기조를 보이고 있다”며 “향후 30조원 규모의 녹색 투자 계획이 추진될 예정인데, 이 또한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도 여전히 높다. 최근 거래를 보면 원자력, 수소, 탄소 포집·저장(CCS) 분야에 대한 투자 수요도 확인되고 있다”며 “기관투자자와 은행 모두 전환 금융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자블리 총괄은 “불확실성이 많았던 앞선 발표자들과 달리, 오늘 나는 비교적 낙관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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