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조선소 폐쇄에 이어 한국GM 군산공장 사태로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맞은 군산, 스트레이트뉴스는 GM 군산공장과 지역경제의 현주소, 그리고 GM사태의 향후 방향성을 가늠해 보는 르포르타주를 기획했다. 이번 르포르타주는 5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목차]

① 위건 부두와 군산 부두

② 한국GM의 더티 플레이
③ 한국GM의 가려진 민낯
④ 더러운 책략의 제물, 군산공장
⑤ 변화의 길목에 남겨진 시민들.

조선소 이어 GM고통... “힘들지만 다시 살아나겠지”

서울에서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군산 경암동. 숙소에 여장을 풀고 식당가가 밀집해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군산산업단지에 GM 군산공장과는 꽤 떨어진 지역임에도 골목 어귀에 주민자치위원회 명의의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었다.

그간 언론에서 접해왔던 풍경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골목 안쪽에는 ‘임대’로 내놓은 불 꺼진 상가가 많을 터였다. 오가는 행인이 있기는 할까?

하지만 골목 안쪽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9시 30분, 작은 골목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식당이 영업 중이었다. 식당 앞 도로는 주차된 차량으로 빼곡하고, 적지 않은 행인들이 들락거렸다. 술을 마시다 식당 앞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채 방치되어 있는 한국GM의 정문 간판 ⓒ스트레이트뉴스
페인트가 벗겨진 채 방치되어 있는 한국GM의 정문 간판 ⓒ스트레이트뉴스

손님이 없어서 파리만 날린다던 뉴스들이 무색했다. 군산이 아예 IMF 외환위기사태나 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Financial Crisis)에 버금가는 상황일 거라는 짐작이 어그러지는 순간이었다.

이 골목에서 20여 년 동안 횟집을 운영했다는 김권흡(54세) 대표는 지난해와 올해 장사가 어떤지 물었다.

“올해는 뭐... 사실 올해보다는 지난해가 더 힘들었지. 현중 조선소 사태 때 정말 힘들었거든. GM공장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 문 닫지 않겠어요? 하여튼 굳이 올해만 따지면 한 작년보다 3~4분의 1쯤 줄어든 건 사실이야”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플래카드 ⓒ스트레이트뉴스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주민들의 플래카드 ⓒ스트레이트뉴스

조선소 사태란, 지난해 7월에 가동이 중단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사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손님들도 거들고 나섰다.

“부두 근처랑 오식도동 쪽은 폭삭 망했지만, 수송동 가 보면 잘 알 거요. 힘들다 힘들다 해도 거긴 아직 괜찮은 거 같던데?”

“미국에 캘리포니안가 어딘가 안 있소. 터미네이터가 시장한 데. 거기도 망했다고 글드만 다시 살아났잖어. 군산에 28만 명이 살어요, 28만 명이.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것지. 문재인이가 그냥 놔 두것소?”

그들과 약 40분가량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거리 풍경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2월 13일 GM이 5월까지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할 때만 해도 온 나라가 아우성이었는데, 그때와는 어딘지 달라진 기류였다.

▲군산 부두로 가는 길 ⓒ스트레이트뉴스
군산 부두로 가는 길. 오가는 차량이 없어 황량한 모습이다. ⓒ스트레이트뉴스

GM을 대하는 지역 민심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아예 포기한 데서 오는 담담함일까? 그동안 부각되었던 GM의 ‘먹튀’ 경력이 이제 제자리를 찾아 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GM은 향후 어떤 행보를 취할 것이며, 우리 정부는 군산 지역경제의 뿌리나 마찬가지인 GM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936년 영국 위건 부두와 지금의 군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Penguin Books(1974)
위건 부두로 가는 길 ⓒPenguin Books(1974)

“언젠가 나는 함께 홉을 따다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왜 노조에 가입하지 않느냐고 물어 본 일이 있다. 나는 바로 ‘그들’이 절대 그걸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들’이 대체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이 전능한 존재인 건 분명했다.”

조지 오웰의 문장이다. 1936년, 그는 출판인 빅터 골란츠로부터 영국 북부 탄광 노동자들의 실업에 관한 르포를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약 2달 동안 위건, 리버풀, 셰필드, 반즐리 일대에서 탄부로 일하며 조사활동을 벌인 끝에,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노동을 고발한 위건 부두로 가는 길(The Road to Wigan Pier)이 탄생했다.

당시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탄층은 생지옥이었다. 노동자들은 어떤 보호 장구도 없이 채탄 먼지를 8시간 동안 들이마셔야 했다. 하지만 왕복 수 킬로미터를 무릎으로 기어서 출퇴근하는 시간은 노동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그보다 더했다.

조지 오웰이 자신의 저서에서 그리고자 했던 것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과 진정한 사회주의였다. ‘위건 부두’ 이후, 사회주의자들은 노조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 같다던 ‘전능한 그들’에 대항해 강력한 노조를 세웠고, 노동자들과 전능한 그들의 역사적 대치는 80년을 넘어 지구 반대편인 이곳 군산 부두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1936년의 위건 부두와 2018년의 군산 부두는 성격상, 또 주체상 많이 다르다. 위건 부두가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 대결하는 장이었다면, 군산 부두는 신자유 자본주의와 자국중심 경제의 힘겨루기를 벌이는 점이라서다.

여타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한국GM 군산공장의 노조에도 ‘귀족’, ‘강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으며, 적지 않은 언론들은 그들의 귀족성과 강성을 이번 군산공장 폐쇄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들이 군산의 지역경제를 피폐로 몰아가고 있는 주범이 맞을까?

▲늦은 시간임에도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기 어려운 군산 경암동 골목 풍경 ⓒ스트레이트뉴스
늦은 시간임에도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기 어려운 군산 경암동 골목 야경 ⓒ스트레이트뉴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군산공장 폐쇄의 책임은 GM본사의 ‘이해할 수 없는 회계’와 ‘경영 환경 변화’ 및 그에 따른 ‘경영 실패’가 귀족(강성)노조보다 훨씬 크다는 점, 군산공장은 현실적으로 폐쇄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군산공장이 부평공장과 창원공장 임단협의 제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공장 폐쇄 이후 군산 경제를 살려내기 위한 국가적 대책이 요구되지만, 문재인 정부의 원칙론에 비추어 부평과 창원의 경제 역시 심대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군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한국GM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들은 무엇을 노리는지, 한국GM과 정부의 전략은 무엇인지, 군산공장은 어떤 운명을 맞을지, 지역 주민들은 당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이번 르포를 통해 세부적으로 파헤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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